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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차마고도와 이방원이 드러낸 수신료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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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03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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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수신료가 언급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2007년 방영된 '차마고도'(茶馬高道)다. 국내 방송 다큐멘터리의 새 장을 연 수작인데 절제된 영상 미학으로 티벳 오지와 히밀라야 설산의 장엄함, 그리고 마방 등 소수민족 주민의 간난한 삶을 그려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티베트 불교성지 라싸까지 오체투지(五體投地, 불교식 절)하며 순례하는 여행자들을 그린 '2부 순례의 길'이다. 종교적 구원을 위해 온 몸을 내던지는 고행을 마다않는 그들의 모습은 깊은 울림과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 작품은 KBS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무려 1년 4개월이라는 오랜 촬영기간 제작진들의 고충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처럼 드론이나 CG(컴퓨터그래픽)가 없던 시절, 제작진은 원거리 샷 하나를 위해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진채 하루를 꼬박새워 맞은편 산에 올랐고, 수 킬로미터를 오고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은 KBS의 결단, 제작진의 장인혼이 결합돼 공영방송의 가치와 품격을 되새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프로라면 수신료가 아깝지 않다는 반응도 함께 나왔다.

# 최근 KBS가 공영성 강화를 기치로 내걸고 야심차게 시작한 태종 이방원이 촬영과정에서 동물학대 논란에 휩싸인 것은 그래서 뼈 아프다. 과거 차마고도의 영광을 되새기며 6년만에 부활시킨 대하 정통사극이었지만 돌발악재로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낙마 장면을 위해 달리는 말 앞다리에 줄을 묶어 고꾸라뜨린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이다. 당연히 말을 훈련시켰거나 CG라 생각한 시청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실제 목과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말은 일주일 뒤 사망했다. 제작비 절감이 이유였다고 한다. 인간이 즐기는 드라마의 완성도를 위해, 하나의 생명을 거리낌 없이 희생시키는 제작진의 저열한 생명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과거 정도전, 각시탈 등 다른 사극에서도 같은 '촬영기법'이 자행됐음이 속속 밝혀졌다. KBS의 대응역시 말문이 막힌다. 첫 사과문에서 "낙마 촬영과정에서 사고가 있었다며 재발 않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잘못된 관행을 단순 사고로 치부했다.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결국 KBS는 "동물과 생명에 대한 부족한 인식이 불러온 참사"라고 재차 사과하고 방송을 잠정중단했다.

# 현대극에 비해 사극은 시청률이 낮고 돈은 안된다. 일단 드라마와 달리 PPL(협찬광고)을 붙이기 어렵고 출연진의 높은 인건비에 고증을 위한 의류제작과 분장, 촬영지 섭외 등등 비용 투성이다. 게다가 전투신이 있는 장편 대하사극은 오랜기간 야외 촬영이 이뤄져야한다. 혹한에 코로나까지 겹쳐 촬영은 더욱 까다롭다. 다른 방송사들이 판타지 사극으로 갈음하고 대하 사극을 기피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KBS는 공영방송의 가치를 제고하고 수신료 인상의 명분을 위해 이방원을 제작했다. 그 노력 만큼은 가상한 일이다. 실제 제작진들은 장면 하나하나 열과 성을 다했고 사건 직전 시청률이 10%를 넘어섰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감수성은 과거와 달라졌다. 동물을 자식같은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는 이 시대다. 이 사건은 그동안 수신료 제고를 위한 KBS의 노력을 일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본의 아니게 참혹한 장면을 봐야했던, 그리고 극의 흐름까지 끊기게 된 시청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사극 마니아이자 시청자의 한사람으로 태종 이방원의 종영에는 반대한다. 앞서 보여줬던 탄탄한 연출과 배우들의 명품 연기를 다시 보고 싶다. 다만 KBS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물권에 대한 숙고와 함께 후진적 촬영, 제작 관행 전반을 되돌아봤으면 한다. 필요하다면 책임자 징계는 물론 개선책을 마련하고 공영성을 제고해야한다. 수신료 인상여부와 무관하게 "내가 낸 수신료가 말을 죽이는데 쓰인 것이냐"는 비판이 다시 나와서는 곤란하다.

조성훈 정보미디어과학부장
조성훈 정보미디어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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