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태리, 사랑으로 크는 배우

김태리, 사진제공=매니지먼트mmm

배우 김태리의 필모그래피는 단출하지만 알차다. 어느 덧 서른 중반에 접어든 그는 영화 '아가씨'의 숙희로 시작해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희도에 이르기까지 8명 남짓의 인물을 연기하며 배우로서 빛나는 자취를 남겨왔다. 스물 일곱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고, 때문에 조급했을 법도 했지만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애신을 연기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 돌연 영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떠났던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게 시간을 휘둘리지 않고 손에 쥐고선 스스로를 계속해서 돌아본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살피고, 아끼는 이들을 둘러보며, 배우로서 동력을 찾는다.


그의 굵직한 연기는 바로 이러한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분명한 자아를 가진 이의 활력으로 말이다. 그는 본인의 연기에 만족하는 법이 없다고는 했지만, 말끝에는 스스로를 향한 신뢰를 드러낸다. 자신을 애정해주는 이들의 사랑과 응원, 그것이 김태리가 자신을 신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이 방법의 기제는 결국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사랑과 응원을 부른다는 건, 그만큼의 역량을 지녔다는 거다.



그가 최근에 연기한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극본 권도은, 연출 정지현 김승호)의 희도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는다. 유년시절 받은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과 친구들의 응원으로 더 힘을 내고 나아간다. 결이 같은 역할을 만나자 김태리를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극에서 날고 뛰었다. 화상 인터뷰를 하며 화면 너머로 만난 김태리는 그런 희도의 에너지를 아직 진하게 품고 있었다. 밝고 호쾌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데 꾸밈이 없었다. 희도처럼 사랑으로 크는 배우 김태리의 근본은, 그 사랑을 받을 줄 아는 그릇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게 단박에 느껴졌다. 그리고 아직 그의 그릇을 채우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김태리, 사진제공=매니지먼트mmm

제작발표회 당시 정지현 감독이 김태리 배우가 드라마의 강점이라고 말했어요. 시청자 반응도 마찬가지고요. 스스로는 어떤가요?



"사실 전 제 연기에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그동안은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라는 고민이 장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만족하지 못하니까 더 노력하게 되는 원동력으로 삼았는데 지금은 스스로를 너무 심하게 깎아내리더라고요. 그러다보니 힘들었어요. 스스로를 공격하고 채찍질을 너무 많이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찡찡댔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드라마를 열심히 찍은 분들에게 실례될 수 있겠지만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라는 마음이 들어서 아쉬워요."


희도는 에너지 넘치고 자주적인 인물이에요. 연기하는데 있어 고심한 부분이 있다면요?


"이렇게 연기한 적이 처음이에요. 분석을 많이 안 했거든요. 그동안은 캐릭터 분석이나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희도는 공부할 게 없었어요. 바보잖아요. 고등학생이면서 펜싱 밖에 모르는 친구예요. 촬영 전 펜싱을 배우면서 '희도가 이런 훈련 기간을 거쳐서 이렇게 성장했겠구나'하는 게 자연스럽게 체득이 됐어요. '난 왜 이렇게 실력을 못 따라가지?'하는 슬럼프를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정말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희도를 다 이해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촬영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본능적으로 들어갔던 게 독이 되더라고요. 더 공부하고 들어갔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나희도와 본인의 싱크로율은 어떤가요?


"싱크로율은 성격적인 면에서는 많은 부분이 겹쳐요. 비글미랄까. 또 희도가 밝게 컸는데 사실 혼자 컸잖아요. 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사회생활 하느라요.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음에도 밝은 아이로 컸는데 저도 그랬어요. 자수성가했다는 자신감이 있거든요. 희도도 고등학생이지만 혼자 예쁘게 잘 컸다는 게 저랑 닮은 점이에요. 그리고 일단 저질러 보는 것도 닮았어요. 성격이 야단법석이라 일단 저질러 보는데 희도도 경기를 운영할 줄 모르거든요. 닮지 않은 건 희도는 태양 아래 있는 아이라서 구김살이 없어요. 실패나 좌절이 있어도 땅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업앤다운이 있어서 땅꿀을 파서 빛을 가리고 숨도 못쉬게 만들어요.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죠. 싱크로율을 정확한 수치로 말하긴 어렵고 '내 안에 희도가 있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태리, 사진제공=매니지먼트mmm

드라마에 명장면이 참 많았어요. 본인에게 가장 울림있게 다가온 장면을 하나 꼽자면요?


"울림있게 다가온 장면은 단연코 2부 엔딩이요. 스포츠카에서 이진(남주혁)이가 희도에게 '넌 어떻게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걸 잘하냐'는 말을 하는데 '맨날 진다고 매일이 비극일 순 없잖아. 웃고 나면 잊기 쉬워져. 잊어야 다음이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게 참 좋은 대사라고 느꼈어요. 희도가 그렇게 자라온 거잖아요. 그게 희도의 방식이기도 하고요. 체득한거죠. 눈물로 혼자 싸워온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뱉을 수 있던 거죠. 그래서 되게 와닿았어요. 펜싱을 직접 배우면서 그걸 더 느낄 수 있었죠."


교복 입은 모습에 위화감이 하나도 없었어요. 따로 기울인 노력이 있을까요?


"피부과 열심히 다닌 거? 그거 말고는 딱히 노력한 건 없어요. 나이에 대해서는 부담감은 없었어요. 지인들한테는 일부러 '제가 지금 고등학생을 연기하고 있거든요. 무려 18살이에요'라면서 자랑식으로 농담을 했어요. 한 선배가 '너 요즘 피부과 자주다닌다?'라고 하기에 '고딩이 되어야 하니까요'라고 답을 하곤 했죠."


앞으로도 펜싱을 취미생활로 할 생각이 있나요?


"물론 있어요. 있긴 한데 지금은 펜싱할 에너지가 없어서 당장 취미로는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일단 저를 흥분시킬 수 있는 취미로 에너지를 끌어올린 다음에 하게 되겠죠. 6개월 배웠는데 아깝잖아요. 언젠가는 하고 싶어요."


희도도 그렇게 맡는 역할마다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아요. 사랑 받는 캐릭터를 완성하는 배우로서의 자신감은 어떻게 얻나요?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아무리 스스로를 불신해도 '쟤는 잘할 애야'라면서요. 왜 이렇게 믿음을 받을까 생각해보면 그게 제가 지금껏 쌓아온 것과 역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부분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정의는 못하겠지만 멋지고 대단한 사람들이 나를 믿는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가 못한다고 깎아내려도 '잘했을 걸 알아'라고 말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해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