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이 전한 韓기업의 '탈중국'…"中서 돈벌 것이란 환상 버려라"

2017년 3월 13일 중국 상하이의 롯데마트에 손님이 거의 없다. 롯데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 소비자의 불매 운동 대상이 됐고, 당시 수십개의 롯데마트 점포가 문을 닫았는데 이 매장은 유지되고 있었다. (C) AFP=뉴스1

롯데, 아모레퍼시픽 등 한국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탈(脫)중국'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주요 도시 및 수출입 항구 봉쇄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사업 지속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평가다.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미·중 무역갈등으로 인한 고율의 관세도 '탈중국'의 이유가 되고 있다.

"롯데그룹 중국 내 사업 '완전 정리' 수순"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롯데그룹이 중국 지사를 없앨 계획으로 폐쇄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다"면서 "다른 아시아 시장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팬데믹 이후 중국에서 1000개가 넘는 오프라인 매장을 없앴다. 중국 당국의 봉쇄정책이 수시로,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고, 이에 따른 물류 차질이 발생해 사업 불확실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이외 다른 아시아 시장으로 사업의 초점을 변경하면서 온라인 판매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LG전자 (97,900원 ▼900 -0.91%) 등 한국 대기업들도 중국 현지 업체와의 가격 경쟁 및 '잦고 철저한' 봉쇄 불확실성으로 인해 이미 중국 내 일부 공장의 문을 닫고 있다.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코트라 지사장을 지냈던 스콧 김은 블룸버그에서 "중국은 더 이상 한국 기업에게 기회의 땅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은 너무 심하고, 현지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 등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들을 따라잡고 있다"면서 "이제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돈을 벌 것이란 환상을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블룸버그는 이같은 '탈중국 움직임'이 최근 수십년간 한류, 화장품, 패션의 문화적 영향력에 힘입어 중국 시장에 크게 베팅해온 한국 기업들의 성장 전략에서 '큰 변화'(sea change)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2021년 중국 전체 소매 유통시장 규모는 44조위안이며, 이 가운데 화장품은 4026억위안을 차지했다.

"2017년 사드 갈등 때부터 탈중국 움직임 사실상 시작"

지난 8일 중국 상하이 수후이 지역 일부가 봉쇄되면서 방역요원이 거주 지역을 철제 자물쇠로 걸어잠그고 있다. (C) AFP=뉴스1

사실 한국 기업의 탈중국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 공급망 대란을 촉발하고 미중 무역분쟁이 있기 전부터 씨앗이 뿌려졌던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풀이했다.

한국 기업들은 한때 '세계의 절대적인 공장'으로 여겨져왔던 중국을 벗어나 베트남으로 향했고,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중국 사업이 난관에 부딪혔다. 특히 경북 성주에 사드기지를 제공했던 롯데가 가장 큰 피해를 봤다. 한국 (현재) 정부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중국과 갈등 양상이 되는 한 요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사드 영향으로 중국 사업이 타격을 받기 전인 2016년에 한국 이외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2080억원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지금 이 회사는 미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고, 설화수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남석 전북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흑연 원자재를 포함해 한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수입품 228개 중 약 80%가 중국산"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의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데 도움을 주려 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석유화학, 자동차 등의 주요 원자재 공급처를 다변화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발족했다. 가령 LG에너지솔루션은 칠레 기업 SQM과 대체 리튬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기업들도 탈중국을 위한 자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 한국 기업들은 완전히 중국 사업을 접는 대신 합리적인 수준에서 정리를 하고 있다. 삼성SDI (431,000원 ▼10,500 -2.38%)는 작년에 중국에 있는 배터리 팩 공장 두 곳을 폐쇄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20년 중국 업체에 LCD 공장을 매각했지만, OLED 패널용 모듈을 만드는 공장 2곳은 계속 운영할 예정이다. LG전자는 작년에 중국 생산라인 2곳을 폐쇄했지만 16곳은 계속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20년간 살면서 마케팅 및 온라인 플랫폼 사업을 해온 한 한국인 사업가는 블룸버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중국에 계속 머물러야 할지 아니면 모든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차이나 리스크'는 그저 예측할 수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