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 "약 자판기 전면 거부"…'비대면 진료' 브레이크 걸리나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19일 오후 서울 용산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국민건강권 사수 위한 약 자판기 저지 약사 궐기대회에 참가한 약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6.19/뉴스1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원격 의료) 제도화에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해 당사자인 의사와 약사 등 전문가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정부가 화상투약기(약 자판기)에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하기로 하자, 대한약사회는 '약사 말살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추후 정부와의 비대면 진료 대응 협의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대한약사회는 21일 '약 자판기 조건부 실증특례 전면 거부' 성명을 내고 "대한약사회를 중심으로 전국 16개 시도지부가 단결해 단 하나의 약국에도 약 자판기가 시범설치되지 않도록 하는 등 어떠한 조건부 실증특례 사업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비대면 진료 대응 약·정 협의 전면 중단은 물론 정부가 추진하는 약사 말살 정책에 대한 전면 투쟁에 나설 것이다"라고 했다.


약사회는 오는 22일 예정된 보건의료발전협의체 회의에도 불참할 예정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이번 결정의 부당성에 대한 시위다"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판매기'(화상 투약기)를 규제 특례 과제로 승인했다. 약사회는 이에 대해 반발해 시위를 벌여왔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최광훈 대한약사회장과 지역약사회 지부장들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왔다. 지난 19일 전국 약사 1000여명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궐기대회를 진행했다.

화상투약기는 약 자판기로 불린다. 심야 시간이나 공휴일 등 약국이 문닫은 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기기다. 투약기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 약사와 화상으로 상담을 한 후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심의위는 서울 지역 약국 10곳에서 3개월간 시범운영한 후 확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취급할 수 있는 약은 해열제, 진통제 등 11 종류다.

화상투약기는 지난 2012년 약사 출신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가 개발했지만 10년 가까이 약사법에 묶여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약국이 아닌 장소에서 약사의 의약품 판매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화상투약기를 통한 일반 의약품도 판매가 불가능했다. 지난 2019년부터 규제 샌드박스 실증 규제 특례와 관련한 논의가 있었지만 불발됐다.

약사회는 화상투약기가 '비대면'이라는 점에 거부감을 보인다. 약사회는 "대면 원칙 훼손, 기술과 서비스의 혁신성 부족, 소비자의 선택권 역규제, 의약품 오투약으로 인한 부작용 증가 등 약 자판기로 인해 발생할 문제는 분명하다"며 "이(화상투약기)보다는 공공 심야약국 운영을 확대해 의약품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약 자판기 실증특례 사업이 가지고 있는 위법성을 끝까지 추적, 고발해 기업의 영리화 시도를 반드시 저지해 약 자판기가 약사법에 오르는 것을 막아내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비대면진료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면서다.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었으나 코로나19 유행 이후 2020년2월부터 한시적으로 허용돼왔다. 원격 진료, 약배송 플랫폼 등 관련 산업계의 요구가 커지는 데다가 직접 경험한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지난 3월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지속 허용 의견은 56.7%였다.

다만 이해 당사자인 의사, 약사 등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전부터 난항을 겪는 모습이다.

제도화 첫 단체로 정부는 보건복지부와 6개 의약단체로 구성된 보건의료발전협의회 산하에 '비대면진료 협의체'를 구성하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가 참석하지 않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정부가 비대면진료 공급자인 의료계와 논의할 부분인데 진료와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단체와 협의체를 꾸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화상투약기 규제 샌드박스 적용으로 약사들과 마찰도 불가피하다. 보건의약계 단체와 산업계 간 갈등도 심화된다. 서울시의사회는 최근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를 약사법·의료법 위반 등으로 강남경찰서에 고발했다. 약사회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생겨난 배달약 플랫폼의 과잉처방과 탈모, 비만치료제 등 전문 의약품에 대한 오남용을 문제로 지적한다.

약사회 관계자는 "국민 건강이 제일 핵심인 보건의료를 산업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해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건 잘못된 접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