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래퍼들의 보컬 전쟁 '두 번째 세계'에게 주어진 과제

'두 번째 세계', 사진제공=JTBC

JTBC '두 번째 세계'에 출연하는 걸그룹 래퍼 포지션의 여덟 명은 보컬리스트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보컬 전쟁'을 치른다. 그 서막이라고 할 수 있는 사전 무대의 첫 번째 주제는 본업인 랩으로 꾸미는 '프리퀄 무대'였고, 그 앞전에는 각자의 정체를 숨긴 블라인드 노래 영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여덟 아티스트의 무대가 아닌, 한 출연진의 등장이었다. 첫 술에 당연히 배부를 수야 없고, 아직 노래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으니 화제 요소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두 번째 세계'에 대한 포털 소개글은 'K-POP 걸그룹 메인 래퍼들의 보컬 전쟁! 래퍼를 넘어 보컬리스트로서 나아갈 그녀들의 첫걸음! 과연 '두 번째 세계'에서 인정받을 아티스트는 누가 될 것인가?'라고 적혀있다. 배틀러는 원더걸스 유빈, AOA 출신 신지민, 마마무 문별, 오마이걸 미미, 우주소녀 엑시, 모모랜드 주이, 빌리 문수아, 클라씨 김선유이고 심사위원은 김범수, 정엽, 에이핑크 정은지, 비투비 서은광, 멜로망스 김민석이다. 출연진 구성은 제법 흥미롭다. 2세대부터 4세대 아이돌 멤버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펼친다는 점만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심사위원도 정통파 보컬리스트들과 실력파 아이돌 보컬리스트를 적절하게 잘 배치했다.



1회의 '프리퀄 미션'에서 문수아는 콤플렉스였던 허스키 보이스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한계를 넘어 두 번째 세계로 가겠다는 각오를 "내 목소리는 연금술"이라는 가사에 담아 첫 무대를 꾸몄다. 유빈은 랩과 보컬의 경계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며 팬송을 불렀다. 미미는 "모든 걸 내숭 없이 다 꺼내 그림을 그리겠다"며 여유가 돋보이는 신나는 무대를 선보였다. 문별도 "마마무 없이 혼자서도 일당백, 눈치보지 말고 즐기자"라는 가사처럼 여유있게 무대를 이끌었다. 15살의 막내 김선유는 "정글의 왕은 내 차례, 아기 사자 아니다"라는 신인의 당찬 패기와 함께 파워 래핑을 선보였다.

'두 번째 세계', 사진제공=JTBC

이어 더해 '개그캐'로 소비돼왔던 주이가 속사정을 털어놓으며 잔뜩 긴장한 채로 무대에 오른 모습은 그 자체로 성장의 서사를 완성했다. 그리고 아마도 시청자들이 가장 주목했을 신지민 무대. 그는 백스테이지에서부터 긴장감에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불안에 떨며 지냈던 지난 2년 간의 시간들을 언급하며 가까스로 무대에 올랐고, 파워 래핑을 쏟아내며 현장 관객들로부터 "멋있었다, 보고 싶었다"는 격려를 받았다. 그는 "너무 감사하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며 눈물을 흘렸고, 이를 지켜 보던 타 참가자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여덟 명이 보여준 무대의 각 면면들은 흠 잡을 데가 없다. 일부 참가자들의 지난 사연은 하나의 서사를 꾸리기에도 충분했다. 출연자들의 다양한 세대만큼이나 서로 다른 개성과 고민을 가지고 있고, 이는 그 자체로 걸그룹이 경험하는 여러 특수한 상황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충족했는지에 대한 긍정의 답을 내놓기엔 뒤따르는 피드백이 애매하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1회 시청률은 0.8%를 기록했다. JTBC의 타 음악 예능들의 시작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낮은 수치다. 지난 5월 막을 내린 댄스 서바이벌 '쇼다운' 1회 시청률도 1.7%였다. 스트리밍 서비스 되고 있는 OTT 티빙에서도 상위 랭크에 오르지 못했다. 첫 닻에서 시청률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지 못한 셈이다.


누군가는 즐기기 위해, 누군가는 팀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누군가는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는 출연 이유를 밝혔다. 참가자들의 케미스트리나 시너지가 모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서사의 집결력은 다소 부족하다. 보여준 무대들도 기존에 보여준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 점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오래 붙들지 못했다. 하지만 서두에 언급했듯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기에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들이 앞으로 보여줘야 할 제스처는 오로지 두 가지다. 의외성과 연대. Mnet의 '퀸덤' 시리즈는 참가자들의 '진짜 하고 싶었던 무대'라는 공통된 목적 의식 안에서 감동과 화제성을 낳았다. 비슷한 갈래라 볼 수 있는 '두 번째 세계'도 참가자들의 단순한 보컬 도전이 아닌, 완벽하지는 않아도 아름다움이 있는 장정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