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읽지 못했다" 파산 후 7년…AI로 재기 꿈꾸는 '창업 오뚝이'

김유석 일만백만 대표. /사진=일만백만 제공

'가로본능' '초콜릿폰' 등 피처폰들이 쏟아지던 2000년대 초, 김유석 일만백만 대표의 사업 기질은 빛을 발했다. 당시 김 대표는 웹브라우저 기업 '팬터로그'를 창업, 삼성전자 (77,400원 ▼800 -1.02%)·KT (37,250원 ▼450 -1.19%) 등 대기업에 납품하며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파도처럼 밀려온 스마트폰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김 대표는 2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바람을 읽지 못하고 파도를 타지 못했던 순간"이라며 "파산 후 7년간 실패를 인정하는 성숙의 시간을 가지면서 시장이 원하는 것을 고민하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웹브라우저'로 승승장구 했지만…스마트폰 바람 타지 못해"김 대표가 창업을 시작한 건 20대 후반이던 2000년이었다. 당시 LG-인터넷(LG-Internet)에 재직 중이던 김 대표는 밀려드는 '창업붐'에 직면했다. 함께 일했던 김 대표의 파트장과 사수 등 약 200명의 직원들이 창업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덩달아 사표를 던진 김 대표는 적립 구매 형태의 서비스 기업 '자~!클릭'을 그 해 6월 설립했다. 몸 담았던 LG-인터넷 등 다수 기업들도 김 대표의 첫 아이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닷컴버블 붕괴로 약속된 투자가 모두 무산되면서 서비스를 완성하지 못한 채 6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사업을 접어야했다. 집안에서 창업에 보태라며 지원받은 결혼 자금 1억원도 모두 사라진 뒤였다.

2일 김유석 일만백만 대표가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사진=일만백만 제공

이후 김 대표는 PC화면과 같은 웹브라우징으로 모바일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가상화 인터넷 브라우저'를 비롯해 '휴대전화 입김 인식 엔진', AR엔진, 만화 서비스 플랫폼까지 총 4개의 아이템을 준비했다. 이 중 빛을 본 건 브라우저였다. 2006년 12월 '팬터로그'를 설립한 김 대표는 웹브라우저 사업을 본격화했다. 500만대 피처폰에 팬터로그의 브라우저가 탑재됐고 연 평균매출 약 25억원 달성 등 성과를 냈다. 김 대표는 "팬터로그는 경쟁사 대비 20~30배 빠른 웹브라우징 속도로 피처폰 시장에서는 경쟁자가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피처폰 바람을 타던 팬터로그는 '스마트폰'이라는 파도를 만나며 위기를 맞았다. 2007년 애플 '아이폰'이 등장한 뒤, 불과 3~4년 사이 국내에도 스마트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것. 김 대표는 "아이폰이 시장을 혁신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에 대응하는 브라우저를 만들었지만 피처폰 시장 자체가 소멸해버렸다"며 "팬터로그를 포함해 모든 기존 모바일 솔루션 기업들이 한꺼번에 고꾸라졌다"고 전했다.
글만 쓰면 영상이 된다…'일만백만'으로 재기팬터로그는 기존 웹브라우저 모델에서 클라우드 게임 플랫폼 개발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러나 5세대(5G) 이동통신 도입이 지체되며 이마저도 어려워지자 결국 2014년 5월 파산했다. 김 대표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이라는 법정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직원 급여가 제대로 지급되지 못했고 많은 분들이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며 "반성이 먼저 필요했다. 자숙과 고민하는 시간을 7년간 가지면서 그 동안의 세월을 복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민까지 고민하며 3년간 한국과 미국을 오가던 그는 코로나19(COVID-19)가 번지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 대표는 "한국에 돌아오니 자본시장과 그에 따른 지원 영역도 점차 성장하고 있었다"며 "(창업) 보조금 지원도 많아지면서 창업하기에 좋은 시장이 됐다는 확신이 생겼고, 지난 1월3일 '일만백만'을 창업하게 됐다"고 전했다.


일만백만은 글만 있으면 영상으로 바꿔주는 인공지능(AI) 기반 '텍스트 투 비디오'(Text To Video) 기술을 개발 중이다. 특정 텍스트에서 키워드를 찾은 뒤 해당 키워드에 맞는 영상을 찾아 합성하는 것이다. 일만백만은 창업진흥원 'K-스타트업 2022' 혁신창업리그 본선에 진출하는 등 사업 관련 성과도 내고 있다. 해당 서비스는 오는 2024년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생성된 스크립트에서 키워드를 찾는 '텍스트 마이닝', 키워드에 맞는 영상을 찾는 '씬 매칭', 이렇게 만든 씬들을 합성하는 '영상 합성' 등으로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며 "메가 인플루언서들의 검증된 영상을 학습해 일반인들도 트렌디한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이코노미가 발달돼 있다"며 "텍스트를 비디오로 바꾸는 기술을 완성해 글로벌 플레이어들에게 API로 판매하는 것이 목표다. 영상으로 소통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