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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엄마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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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 시인
  • 2019.09.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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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손종수 시인 ‘엄마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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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시와경계’로 등단한 손종수(1958~ )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엄마 반가사유상’은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위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꿈을 찍는 사진관’)을 함께한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철돼 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서로 서로가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시인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 받아줄 사람”(‘검은 방’)조차 없는 집으로 돌아오면 외로움과 그리움이 교차한다. 하지만 “사는 일이란 끝없이 견디고 견디는”(‘자화상’) 일이라는 것을 시인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여는 시 ‘운집(雲集)’은 한낮의 화려함과 한밤의 외로움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서울에 사는 시인은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 ‘눌목 차정보 초대 기획전’(시인의 페이스북 참조)에 참석한다. 유명 작가의 전시회인 만큼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시인의 지인들도 많이 참석한 듯, “오가며 눈빛 마주칠 때마다”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한다.

순간 시인은 “우리, 이렇게 뜨거운 사람들이었나?” 의심한다. 아니 의구심이 든다. “뜨거운”이라는 말 속에는 ‘가까운, 친근한, 열정적인, 소통하는, 애정하는’ 등의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아마도 행사 뒤 뒤풀이가 이어졌을 것이다. 서울행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골목길은/ 바람 한 점 없이도 스산”하다. 시인은 문득 느낀다. “아, 모두 외로웠구나”. 화려한 잔치가 끝난 뒤의 스산함, 시인은 그래서 전시회라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잔치’라는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화려하고 풍성한 잔치 뒤의 황량하고도 황폐한 마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조금 특별한 일상에서의 삶의 통찰. 여기에 더해, 시인은 일상의 언어로 현대인의 고독과 시적 사유를 담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시장바닥에서 배추겉대를 주워와 김장을 해도 누구에게나 떳떳했던 사람 젖은 손 마를 시간 없이 분주하게 일하고 편히 쉬는 모습 볼 수 없었던 사람 가난하게 살아도 늘 이웃과 나누려 하고 누구에게나 웃으며 친절했던 사람

어릴 때는 여자들이 다 그런 줄 알았다
한참 뒤에 알았다 모든 여자들이 그렇지는 않더라

조금 자란 뒤에는 엄마라서 그런 줄 알았다
살아보니 모든 엄마들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때보다 엄마 나이에 더 가까워진 이제는 안다

엄마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고 그렇게 살다 떠났지만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여자도 엄마도 아닌, 어진 한 사람을 그리워한다

- ‘어진 한 사람’ 전문


시인에게 엄마는 그동안 쓴 “모든 글의 세계관, 동력”(‘시인의 말’)이면서 그리움의 원천이다. 시인은 사람들 속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캄캄한 빈방에서, 꿈속에서 “여자도 엄마도 아닌, 어진 한 사람”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아버지가 “미움보다 더/ 날카로운 무관심”(‘아득한 화해’)의 대상이라면 엄마는 “저 창가에 황금비늘 물고기 떼 환하게/ 몰려들 때까지 옷자락”을 잡고 싶은 “진흙 속의 보석”(‘박회인간’), “부처님 가운데 토막”(‘엄마 반가사유상’) 같은 분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견딜 수 없”(이하 ‘사람 인’)어 “서로 기대어 살 수밖에 없”다. 시인이 그리는 여인상은 가난하지만 떳떳하고, 부족하지만 이웃과 나눠 먹고, 부지런하면서 친절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엄마’다.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엄마를 생각하면서, 엄마 같은 사람과의 사랑을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엄마 같은 여자는 없다. 지고지순한 엄마의 사랑에 비해 남녀 간의 사랑은 “불안하거나 불온해서 불길”(이하 ‘딥블루’)하다. 엄마가 기준인 한 시인의 사랑은 “어김없이 찾아와 확인하고 돌아가는 불행한 예감”일 뿐이다. 헌데 엄마에 대한 깊은 사랑이 시인을 더 외롭고 쓸쓸하게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붉은 맨발 종종거리며 주택가 쓰레기봉투를 기웃거리거나 문 앞에 버려진 패스트푸드점 배달상자 프라이드치킨 조각 따위를 쪼던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굶주린 길고양이들의 혐의가 짙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관심 밖에 있었으므로 누구도 확인할 책임은 없고 용케도 날개의 기능을 기억해 살아남은 소수만 전선 위에 있다

평화의 상징이란, 따분하게 회자되는 전설일 뿐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어느 날 파란 하늘 위로 무작정 날아오른 순결의 업, 오늘도 구구구구 하릴없는 주문이나 외운다

도심 어느 곳이나 지천에 깔린 어떤 이름은 보이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 ‘실종신고’ 전문


손종수의 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연민’이다. 시 ‘실종신고’는 시인의 연민이 사람만이 아닌 비둘기나 길고양이와 같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연민의 근원에는 “어린 시절 들러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허기”(이하 ‘그렇게 허기’)가 있다. “생의 깊은 갈증”(‘나는 왜 이렇게 조급한가’) 같은 허기는 사람들과의 소통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여 시인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밥과 술을 살 뿐 아니라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주택가 쓰레기봉투를 기웃거리”는 비둘기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음악이 흐르는 찻집 의자 팔걸이에 턱 괴고 앉아 유리문 밖을 바라봅니다

작고 하얀 자동차가 지나갑니다 그 뒤로,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 느릿느릿 따라갑니다 그 뒤로,

꽃보다 고운 연인들 알록달록 웃으며 스쳐갑니다

분가루보다 고운 햇살이 계단 위로 나지막하게 내려앉고 한낮의 중력을 몽땅 끌어안은 눈꺼풀은 파르르 파닥파닥 파르르 꽃밭의 나비가 되고,

- ‘행복’ 전문


시인에게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지 곁에서 그냥 가만히 귀 기울여주는 일”(‘위로’ 전문)이 위로이면서 위안이다. 사람들을 위로하다가 오히려 내가 위로받는 행복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다. 엄마와 함께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겠지만 지금은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은”(‘왼발의 기억’) 여행이나 혼자 “음악이 흐르는 찻집 의자 팔걸이에 턱 괴고 앉아 유리문 밖을 바라” 볼 때와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다. 시인은 “꽃보다 고운 연인들”이 “알록달록 웃으며”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행복할까?

◇엄마 반가사유상=손종수. 북인. 146쪽/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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