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레터]과부하 걸린 증권사 전산실

"스케줄이 완전히 꼬였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올해 계획해 놓은 전산개발에 채 반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A 증권사 전산실을 찾은 기자에게 전산개발 직원이 다짜고짜 하소연부터 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정책들이 쏟아지다보니 전산개발의 우선순위가 뒤바뀌게 돼 당초 계획했던 일정을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전산개발은 증권사의 모든 서비스에 선행합니다. 고객들이 새롭게 접하는 서비스들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전산개발이 진행된 것들입니다. 만일 전산개발이 예정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증권사는 서비스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고 결국, 고객의 피해로 이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증권사 전산실에 있어 개발 스케줄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러데 최근 정부에서 새로운 정책들이 잇따라 쏟아지면서 전산실의 기존 스케줄이 엉망이 되고 있습니다. 해외펀드 과세, 펀드 판매사 이동제 등이 대표적인데요, 정부정책은 당장 반영되지 않으면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개발 순위에서 우선순위로 배정되고 다른 개발 작업은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죠.

A 증권사 전산개발 담당자는 "정책이 일시에 몰리게 되면 전산실은 사실상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며 "하반기에 새롭게 선보이는 상품이나 서비스들도 많은데 밤낮으로 일해도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통상 일감이 몰리게 되면 외부 업체에 전산개발을 위탁하기도 하는데요, 이마저도 녹록치가 않습니다. 뒤숭숭한 업황 탓에 금융회사들이 전산비용을 감축하다보니 많은 외부 업체들이 문을 닫게 됐고 일감을 소화할 만한 업체는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맡기고 싶어도 맡길만한 업체가 없다는 것이죠.

실제로 증권사들이 가장 많이 외부에 위탁하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의 경우 현재 3개 업체만 남아있는 실정입니다.

한 전산개발 업체 관계자는 "클라이언트로부터 전산개발을 의뢰 받게 되면 단순히 시스템만 구축해 주는 것이 아니라 6개월∼1년간 유지보수도 해줘야 한다"며 "영세한 외부업체 입장에선 무턱대고 개발을 맡을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산의 핵심은 안정성입니다. 더욱이 온라인상으로 거액이 오가는 금융회사의 전산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자칫 무리한 일정 소화로 전산에 착오라도 생긴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는 이상일 것입니다.

새로운 정책을 준비하는 당국자들이 회의석상에서 전산개발에 차질이 없는지 한번만 생각해 준다면 증권사 전산실에 걸린 과부하가 조금은 뚫리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