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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천하통일과 경제

[김영수의 궁시파차이(恭喜發財)]<5회>

김영수의 궁시파차이(恭喜發財) 머니투데이 김영수 사학자(史記 전문가) |입력 : 2013.10.04 06:00|조회 : 6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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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천하통일과 경제
오늘날 중국의 여성 파워는 어느 나라 못지않다. 가정에서 여성의 위치는 단연 남성을 압도한다.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의 활약상은 정말 부러울 정도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 인구는 약 3억명 정도로 파악되는데, 이 수치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성인 여성의 80% 수준이다. OECD 국가의 평균치인 67%를 훨씬 상회한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중국은 단연 선진국 반열에 있다.

2010년 중국은 제2 국부펀드로 궈신(國新)공사를 설립했는데, 3조 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위해 설립한 회사다. 자본금만 45억 위안(약 9000억원)에 이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공사를 대표하는 이사장에 68세의 셰치화(謝企華)라는 여성을 앉혔다는 것이다. 장관급 이상의 고급 관리의 퇴직 연령인 만 65세를 넘어선 여성을 이 엄청난 자리에 임명했다는 사실은 중국이 그녀의 능력을 얼마나 믿고 인정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이상 홍순도 외, < 베이징 특파원 중국문화를 말하다 > 103~104쪽)

중국 비즈니스 분야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과 파워는 하루가 다르게 신장하고 있다. 셰치화는 이런 상황을 대표하는 사례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셰치화를 비롯한 여성 사업가들에 대한 중국 당국의 신뢰와 존중은 뜻밖에 지금으로부터 2,200여 년의 한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다름아닌 진시황(秦始皇)이다.

진시황의 천하통일과 경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한 진시황의 이미지는 사상과 언론탄압의 대명사인 ‘분서갱유(焚書坑儒)’와 각종 통일 정책으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통일 사업으로는 화폐, 문자, 도량형의 통일이 주요 사업이었다. 진시황은 이런 통일 사업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인프라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무려 다섯 종류에 달하는 도로망 구축이 가장 중요했다. 군사 전용 도로와 황제 전용 도로를 비롯한 다섯 종류의 도로망은 통일된 화폐, 문자, 도량형을 전국으로 빠르게 전파하는 네트워크 구실을 했다.

무리한 측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의 토목 사업, 그 중에서도 도로 건설은 경제를 염두에 둔 장기적 안목에서 나온 국책 사업이었던 셈이다. 이런 점에서 진시황의 도로망 구축 사업은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통신망이 역참과 봉수대 정도로 국한되어 있던 시대에 도로망 구축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절대적인 인프라였다. 또 각지의 생산품을 전국적인 규모로 전달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구축해야 할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였다.

다양한 형태로 구축된 도로망을 따라 통일된 화폐와 문자 그리고 도량형이 보급되고, 각지의 다양한 산물이 전국적 규모로 교환됨으로써 국가 경제 활성화에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요컨대 진시황의 도로망 구축은 7배 가까이 커진 통일 제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었고, 동시에 각종 통일 사업을 효율적으로 빠르게 완수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프라였다. 진나라는 또 진시황의 통일 이전부터 점령 지역의 사업가들을 타 지역으로 이주시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매우 앞선 경제 정책을 선보였다. 이런 경제 정책은 훗날 진시황에게도 영향을 주어 진시황이 기업가들을 우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지(烏氏) 지방의 나(倮)라는 사람은 목축으로 치부했는데, 이를 밑천 삼아 진기한 물건이나 옷감 따위를 사서 융족의 왕에게 바쳐 그 보상으로 가축을 받아 사업의 규모를 점점 불려 나갔다. 그가 키운 가축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가축을 셀 때 마리 단위로 세는 것이 아니라 가축이 있는 골짜기를 세야만 했다. 진시황은 이런 나씨를 군(君)의 작위를 받은 자들과 동등하게 대우했고, 정기적으로 다른 대신들과 함께 조정에 들어와 조회에 참석하는 특권까지 부여했다. 진시황의 기업인 우대는 남녀 차별이 없었다. 진시황이 여성 사업가인 청(淸)을 얼마나 중시하고 우대했는가에 대한 기록이 < 화식열전 >에 잘 남아 있다.

“파(巴) 지역에 청(淸)이라는 과부가 있었다. 조상이 단사(丹砂)를 캐는 광산을 발견하여 몇 대에 걸쳐 이익을 독점해왔고 이로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산을 소유하게 되었다. 청은 과부의 몸으로 가업을 잘 지키고, 재물을 이용하여 자신을 지키며 타인에게 업신당하지 않았다. 진시황은 그녀를 정조가 굳센 부인이라 하여 손님으로 대우했고, 또 그녀를 위해 ‘여회청대(女懷淸臺)’까지 지어 주었다. 이처럼 나(倮, 오지현의 목축업자)는 비천한 목장주였고, 청은 외딴 시골의 과부에 지나지 않았으나 만승의 지위에 있는 황제와 대등한 예를 나누고 명성을 천하에 드러냈으니 이 어찌 재력 때문이 아니리오?”

위 기록의 요점은 이렇다. 오늘날 쓰촨성 지역에서 광산업을 하는 과부 청은 가업을 잘 유지하면서 자기 몸도 잘 지켜내 진시황으로부터 정조가 굳센 여인으로 칭찬을 받은 것은 물론 황제와 대등한 예를 나누는 손님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더욱이 진시황은 그녀의 사업과 정절을 기념하는 ‘여회청대’ 또는 ‘회청대’라는 건물까지 지어주었다.(혹자는 이 건축물을 사업가들의 모임 장소로 보기도 한다)

진시황의 각종 통일정책을 기업인을 우대하는 경제정책과 연계시켜 새로운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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