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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지나야 낮이 오듯··· 비워야 채워진다

[노엘라의 초콜릿박스]

노엘라의 초콜릿박스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입력 : 2013.10.05 08:20|조회 : 9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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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지나야 낮이 오듯··· 비워야 채워진다
우연히 한 화가를 소개받았다. 내가 명함을 건네자 그는 명함사이즈의 빈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민머리에 까만 안경을 쓰고 웃고 있는 코믹한 얼굴이었다. 그곳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내게 주었다. 즉석 명함인 것이다. 독특함에 놀라 이름을 보니 그는 다름 아닌 이목을 화백이었다. "아~ 극사실주의···· 그분?" 아는 척을 하니 웃으며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개념미술에 가까워요.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죠"라고 대답한다.

상당한 심오함으로 기억되는 그의 작품과 명함에 그려진 코믹함은 언뜻 매치가 되지 않았다. 이를 눈치 챘는지 그는 최근 작품을 보여주었다. 극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먼, 단 세 개의 선으로 만들어진 웃는 얼굴이었다. 왜 갑자기 화풍을 바꿨냐는 질문에 그는 시력의 저하로 잘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된 그는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고통의 끝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두 눈과 꼬리가 올라간 입. 그는 이후 수없이 많은 웃는 얼굴을 그렸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많은 얼굴들이 모두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이 세상에 똑같이 웃는 얼굴은 단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각기 살아온 길이 다르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 다르듯 똑같이 웃는 얼굴은 분명 없다. 한 사람의 웃음은 그의 인생을 담고 있을 테니. 제각기 다른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단 세 개의 선이 담고 있는 것처럼, 스마일을 그린 이목을 화백의 작품에서 그의 인생이 보이는듯했다.

그의 화풍은 분명 달라졌다. 섬세했던 작업은 극히 단순화 되었다. 나무와의 관계를 통해 정교한 사물을 그렸고 이를 통해 삶을 표현했던 그는, 이제 단 세 개의 선으로 웃는 얼굴을 그린다. 하지만 '결국' 거기에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 채워진 것과 비워진 것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던 그는 여전히 '스마일'을 통해 그것을 보여주고 있기에.

이목을, smile-11031, 363.6x227.3cm, 캔버스에 아크릴, 2011
이목을, smile-11031, 363.6x227.3cm, 캔버스에 아크릴, 2011
캔버스에 그려진 단 세 개의 선. 선과 선 사이의 관계에 담긴 각자의 삶의 모습. 캔버스 상당부분을 채우고 있는 여백과 그 안에 채워진 웃음의 선이 그의 그림의 생명을 연장시켜주고 있는 듯 했다. 그가 말한다. "채움과 비움은 공존한다." "서로 교감을 주고받으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날 밤 난 생각에 잠겼다. 낮과 밤, 기쁨과 슬픔, 인생과 죽음이 그러하듯 채움이 없으면 비움이 없고, 비움이 없으면 채움이 없다. 채울수록 비워지고 비울수록 채워지는 비움과 채움, 그것은 어쩌면 반의어가 아닌 동의어일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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