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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미혼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승형의 세상만사]

이승형의 세상만사 머니투데이 이승형 건설부동산부장 |입력 : 2016.10.07 05:10|조회 : 9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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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미혼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올해 48세인 구보씨는 평소 습관대로 오늘 아침에도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했다. 그는 6년 전부터 프랜차이즈 문구점을 운영 중이다. 주변 자영업자들은 창업 1년도 안 돼 절반이 가게 문을 닫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그의 가게는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매출을 내고 있다.

여기서 ‘먹고살만한’이라 하는 것은 알바생 3명(주말 알바 1명 포함)의 인건비와 점포 임대료, 각종 운영비를 제외하고 가져가는 돈이 집세 등 생활비를 충당하고, 노후 보장 적금을 붓는 정도라는 말이다. 그는 미혼이라 자신만의 의식주에 필요한 비용 외에는 딱히 돈 들어갈 일이 없다. 집도 없지만 빚도 없다. 외롭지만 홀가분하다.

마침 즐겨 듣는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한 국회의원의 근심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요, 2008년에 서브프라임 사태를 겪었던 미국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에요. 정말 신기해요. 왜 안 터지죠? 안 터지는 게 신기한 거에요, 지금.”

그렇구나. 얼마 전인가, 우리 국민들 한 사람당 빚이 7200만원인가 얼마인가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정말이었구나. 그렇다면 아이엠에프 또 오는 거 아니야? 중소기업에 입사해 신입 사원 꼬리표를 막 떼고 한창 일하던 때 겪었던 그 날의 악몽이 잠시 스쳐갔다. 그 땐 정말 죽고 싶었지. 퇴직금은커녕 밀린 월급도 한 푼 못 받고 실업자가 됐으니. 부모님 빚도 다 떠안아야 했지. 십 수 년 간 고생 많이 했다 진짜. 신용불량 벗어나려고 그 빚 다 갚은 거 생각하면.

구보씨는 왠지 우쭐해졌다. 이제 빚 한 푼 없으니 난 부자네. 이번 주말엔 교외에 바람쐬러 드라이브나 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우울하기도 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세월이 흘렀구나. 결혼할 엄두가 없어 처자식도 없이 살아온 인생. 그의 조울 증상은 요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든다.

“결혼을 왜 해요? 그건 ‘헬게이트’로 가는 지름길이라고요. 사장님 살던 대로 그냥 혼자 사세요.”

서른 줄을 바라보는 한 알바생이 지난 주 회식에서 혀꼬인 목소리로 한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군 제대를 한 지가 몇 해 전인데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친구다. 음주 문제가 좀 있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성실해서 연말에 정직원으로 뽑을까 생각중이었는데 가끔 이렇게 염장을 지른다.
이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요즘 젊은 세대들이 대부분 그렇단다. 취업은 안 되고, 그러다보니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기 힘들고…또….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렵다고요. 연애는 사치에요, 사치.”

구보씨는 “그래도 넌 아직 젊잖아”라고 말하려 하다가 말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그럴싸하면서도 어이없는 문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긴 구보씨 역시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집만 놓고 봐도 그렇다. 집 살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벌어 놓으면 도망 가버리는 집값 때문에 어느 순간 그냥 포기했다. 결혼을 못 했으니 딱히 집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집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 걸까. 결혼을 못 해서 집이 없는 걸까.

“너 잠원동 알지? 작년에 거기 아파트 사 놨거든. 올해에만 일억 오천이 올랐어. 일억 오천.”

일억 오천이면 왠만한 직장인 몇 년 치 연봉인데. 가끔 만나는 주변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구보씨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정작 ‘그래서 좋겠다’라고 호응해주면 다른 답이 돌아온다. 자랑인지, 엄살인지.

“이러다 진짜 죽을 거 같다. 그 놈의 집 때문에 평생 뼈 빠지게 일해야 된다고. 그래도 넌 임마, 행복한 줄 알아. 빚도 없고, 부양할 가족도 없으니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구보씨는 영화 ‘25시’에 나오는 앤서니 퀸으로 ‘빙의’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애매했던 그의 표정. 난 행복한 걸까, 불행한 걸까.

그러자 구보씨는 자신과 같은 ‘늙은 미혼’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강한 예감에 사로잡히면서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이승형
이승형 sean120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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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소셜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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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이상협  | 2016.10.08 17:58

결혼 다시 생각하세요...결혼하면 빚 더미에 쳐박힌 자신을 발견하며 땅을 치고 후회 할겁니다 정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 그땐 이미 늦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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