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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화공원 된 석유비축기지

기고 머니투데이 이영범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입력 : 2017.09.25 04:05|조회 : 7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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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석유를 비축하던 기지가 문화공원으로 재생되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화력발전소에서 연간 500만명 넘는 관람객이 찾는 문화공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변신한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나 가스 저장고를 주거와 문화의 복합시설로 재생한 오스트리아 빈의 ‘가소메터시티’처럼 산업화 시대의 유산인 석유저장탱크가 장소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시민들이 문화의 가치를 공유하는 곳으로 재생됐다.
 
41년간 일반인 접근이 통제됐던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유사시 서울시민이 한 달 정도 소비할 수 있는 양의 석유를 비축한 곳이다. 1973년 중동전쟁으로 인한 제1차 석유파동을 겪은 뒤 76년부터 3년에 걸쳐 5개의 원형탱크와 1기의 유류출하대가 건설됐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안전을 이유로 폐쇄됐다가 2014년 진행된 국제설계공모를 계기로 재생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석유비축기지의 장소성과 탱크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낸 ‘땅에서부터 읽어낸 시간’이 설계공모에 당선됐고 이 설계안을 바탕으로 14만㎡의 땅에 47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석유가 아닌 문화를 비축하는 문화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중수처리시설, 빗물저장, 지열 활용 등의 자연을 담은 문화비축기지는 운영이 민관협치를 기본모델로 한다는 점이 다른 문화공원과 차별된다. 조성 과정에서 시민 참여를 통한 워킹그룹 및 탐험단을 운영해 운영기본계획을 수립했고 다양한 분야의 민간전문가가 참여한 협치위원회가 운영의 전반을 책임진다. 문화비축기지는 시민이 단순한 이용자가 아니라 문화콘텐츠를 생산하고 향유하는 시민 문화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한다.
 
장소의 복원을 기본가치로 문화의 민주성과 시민주도성을 내포한 문화비축기지는 ‘서울로 7017’ ‘다시-세운 프로젝트’와 더불어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표적 도시재생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문화비축기지의 재생이 갖는 의미는 ‘땅이 갖는 시간의 기억’과 ‘시대의 역사를 품은 장소성’을 문화라는 콘텐츠로 되살려 시민들이 경험토록 한 데 있다. 장소의 재생, 시간의 재생, 관계의 재생을 가능하게 한 문화비축기지의 미래지향적 가치는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시민주도성에 의해 문화가 생산되고 향유되도록 시민사회가 공간주권을 회복하게 됐다는 점이다. 공권력이 통치이데올로기로 지배한 산업유산이 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고 시민문화공동체가 형성되는 문화플랫폼으로서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은 시민이 공간주권을 회복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둘째, 시민주도성에 기반해 문화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도시재생의 공간언어를 통해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셋째, 문화비축기지는 시민합의와 민관협치에 의해 재생되고 운영된다는 점에서 차별된 가치를 갖는다.
 
장소의 재생이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시민적 합의가 없다면 새로운 디자인의 실험은 결코 1000만 서울시민의 미래적 삶의 희망을 대변할 수 없다. 그래서 시민을 중심에 둔 문화비축기지의 재생은 문화와 자연을 통해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인 동시에 ‘사람을 위해 더 나은 공간을 만드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
 
오래된 가치를 살리고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둔 도시재생이 단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시민사회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단순히 ‘도시공간의 외관’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장소의 가치를 제대로 되살리고’ ‘어떻게 하면 재생된 장소가 시민들이 삶과 직접 연결되며’ ‘어떻게 하면 양질의 재생된 장소가 도시의 문화적 삶을 윤택하게 하는가’에 대한 시민적 합의를 만드는 것이다.

석유가 아닌 문화로 가득 채워진 마포문화비축기지의 개장이 반가운 이유는 바로 이런 가치들이 내재됐기 때문이다

이영범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도시와 삶 이사장
이영범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도시와 삶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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