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만에 무너진 잠룡… 이제는 '미투 혁명'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불붙은 '미투(MeToo, 나도 성폭력을 당했다) 운동'이 정치계로 번지면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았다. 여권의 대표적 잠룡이자 대선후보로 꼽혔던 안희정 충남도지사까지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되면서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 개인의 용기가 핵심권력까지 뒤집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미투 혁명'으로 일컫지만, 아직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날선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들불처럼 번지던 '미투'에 성역은 없었다. 바짝 긴장해온 정치계에도 결국 옮겨 붙었다. 1번 타자는 안 전 지사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경쟁했고, 여전히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던 그는 '미투 폭로' 5시간 만에 무너졌다. 안 전 지사는 6일 0시50분쯤 "오늘부로 도지사직을 내려놓고 일체의 정치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정무비서 김지은씨가 5일 저녁 8시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지난해 6월부터 8개월 간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지 얼마 안돼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폭로 2시간 만인 밤 10시 긴급회의를 소집해 안 전 지사를 출당·제명조치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이 기존 미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밤 10시에 회의해서 제명·출당조치를 한 것이 처음"이라며 "그만큼 현재 집권 여당에서 '미투'를 상당히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당의 도덕성 문제, 운동권의 이중성 등의 문제와 연계됐을 때 지방선거 분위기까지 반전시킬 수 있는 사안으로 보고 발빠르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운동으로 치부되던 미투가 정치권에까지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로 파급력을 가진 것이 입증된 셈이다. 서지현 검사가 지난 1월29일 법조계에서 처음으로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한 폭로를 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이다. 짧은 시간 동안 미투는 노벨상 후보로 꼽히던 문단계의 거장 고은 시인의 성추문을 알렸고, 공연·영화계의 추악한 실상을 퍼트렸다.


침묵하게 만들었던 거대한 권력에 맞설 수 있게 됐고 남성 중심의 성차별적인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기폭제가 된 것. 이를 두고 노희경 드라마 작가는 6일 tvN 주말드라마 '라이브' 제작발표회에서 "이런 아픈 것들을 세상이 알려주고 있다"며 '미투 혁명'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하지만 미투가 갈 길이 아직도 멀다는 지적이 많다. 박숙미 서울시 인권보호팀장은 "미투가 하나의 계기지만, 평등하지 않고 권력 관계에 기반한 문화는 갑자기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금도 드러나지 않은 가해자가 많고 폭로를 고민하는 피해자들 또한 많다. 이들을 위한 출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비리 하나가 밝혀진 것일 뿐 아무 것도 변화가 일어난 것은 없다"며 "밝혀진 사실에 대해 엄중하게 수사하고, 2차 피해를 어떻게 막을지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