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칼럼] 조선업 구조조정, 재무제표만 보지 말고 다각도로 보라

최근 일본에서도 일류에 속하는 모 대학에서 조선해양 분야 신진 교수에 박사학위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을 교수로 조건부 채용했다고 한다. 다만 이후 박사학위 취득을 전제로 한 것이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조선강국의 유명 대학에서 벌어진 이 일은 일본에서 조선해양 분야의 고급인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가늠하게 한다.

한때 조선강국으로 군림한 일본이 한국에 그 자리를 내준 큰 이유 중 하나는 1970년 말부터 1980년 초까지, 그리고 1980년 후반기에 진행된 두 차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생산능력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등 산업규모를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오일쇼크와 세계경제 불황의 위기를 맞으며 일본 조선소들이 통폐합을 통한 재무제표 건실화를 꾀한 시기에 한국도 어려움을 겪었다. 198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며 한국의 노사관계가 역사적 변혁기를 겪는 가운데 때마침 찾아온 조선산업 불황기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을 따라잡기 위한 비장의 무기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이 산업규모와 인력을 축소하며 구조조정의 칼질을 하던 때 한국 산업체들은 노사분규가 안정화에 접어들자 오히려 생산시설을 늘리는 선택을 했다. 일본의 젊은 학생들이 큰 도시에서 다소 떨어진 조선소를 외면하는 사이 한국 정부는 연구특례, 방산특례 등과 같은 병역특례제도를 젊은 사람들에게 제공하며 조선소에 젊은 인력들을 수혈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대학을 방문하면 조선해양공학과 대학원 학생들조차 토요타, 혼다 같은 자동차회사나 소니, 도시바 같은 전자회사 취업을 희망하는 모습을 쉽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결국 전 세계 조선 활황이 도래했을 때 일본은 축소한 생산능력을 늘릴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맞았다. 떠나간 기술자들과 설계자들을 찾을 수 없었고, 많이 줄어든 기자재업체들을 다시 짧은 시간에 재건할 수도 없었다. 일본이 전 세계 조선 불황의 터널을 지났을 때 어려운 환경에서도 꾸준히 미래를 준비한 한국 조선사들과는 도저히 경쟁할 수 없단 사실에 직면해야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오히려 일본 조선산업의 부활을 위해 정부정책을 시행하기도 했으나 한 번 무너진 조선산업은 쉽게 복귀되지 못했다. 이것이 일본 조선산업이 겪은 과거다.

현재 한국 조선해양산업을 보자. 한국의 신문과 뉴스는 온통 한국 조선산업이 사양에 접어들어 나라의 산업을 망치는 범죄자와 같다는 논조들이다. 조선소에 수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국민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산업처럼 묘사한다. 조선소가 있는 도시들은 마치 유령의 도시로 묘사하고 신문과 방송의 기사들을 읽어보면 마치 조선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내일이라도 대부분 당장 회사를 떠나 생계가 막막한 것 같다. 그것뿐인가. 어떤 이들은 조선사의 과거 경영자들이 개인의 성과를 부풀리는 데만 몰입한 파렴치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 조선해양산업은 분명 위기며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한국 조선해양산업이 국민의 아까운 혈세를 무조건적으로 투입하는 사양산업이라는 것과 모든 조선소 경영진이 사욕을 위해 무조건 한국 조선사업체들을 마구잡이로 이용했다는 데 무조건 동의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현시점에서 해야겠다. 산업 자체가 침체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양산업이라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정체는 있을 수 있지만 정상을 다투는 사업이 팽창만 할 수는 없다. 현재는 수비의 시간이지 공격의 시간이 아니다. 또한 사욕을 챙긴 경영자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고 나 자신도 한두 명 정도는 그러한 의심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해야겠지만 과거 많은 조선산업 근로자들과 기업 경영자들은 분명 한국의 경제성장과 같은 배를 타고 자신들의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라는 것도 한국 국민이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많은 국민은 한국 조선소들이 모두 공적자금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친지들조차 그런 오해를 하고 나에게 묻는 것을 보면 조선산업 전체가 국가에 손을 벌리는 것같이 보이나 보다. 당연히 국민의 세금을 일반 산업체에 투입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우조선해양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거치며 3조원 가까운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이제는 4조원 훌쩍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3개 대형 조선소 가운데 공적자금이 투입된 곳은 대우조선해양뿐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채권은행들과의 문제지 국민의 세금이 직접 지원되는 기업들이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올 1분기에만 2500억원 정도의 흑자를 발표했고 삼성도 흑자로 전환했다. 대우도 적자폭을 대폭 줄인 실적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구조조정안을 정부와 은행에서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앞으로 2~3년간 기업 운영을 위한 현금 확보에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선박 건조의 양이 바닥권에 있어 수주가 어려운 상황이고 유가 하락으로 인한 해양프로젝트의 지연이 이어지기 때문에 기업들은 현금의 유동성 문제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조적 조정을 기업 스스로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고 고통스러운 문제들이 발생하겠지만 그러한 구조조정을 강하게 추진해 이번 극심한 위기를 넘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노력을 성실히 하지 않으면 빅딜과 같은 강력한 정부 주도 산업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나에게 구조조정의 전권이 있다면 동일한 결정을 했을 것이다.

조선해양산업의 어려움은 한국만 겪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대륙 전체에 산재한 3000개가량의 조선소를 약 200개로 줄였다가 지난해부터 약 60개로 더 축소하겠다는 구조조정을 현재 진행하고 있다. 중국 국영조선소도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자국선 건조를 몰아주고 아예 정부 차원의 선박금융과 조선소 운영자금 지원을 하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정부의 기대는 한국의 조선소들과 경쟁 혹은 넘어설 수 있는 약 20개 조선소를 장기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라는 소문도 나온다.

일본은 어떠한가. 엔저 효과로 최근 세계 조선시장에서 점유율을 다시 높이기는 했지만 일본도 흑자를 내는 것은 아니다. 미쓰비시조선소는 최근 뛰어든 크루즈선 건조에서 2조5000억원의 적자를 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일본은 전 세계 조선이 불황인 지금 오히려 생산능력을 늘린다. 이마바리 조선소는 600m의 대형 도크를 건조하고 조선해양공학과를 없앤 도쿄대학은 다시 조선해양학과를 부활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이제는 서로가 반대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 조선소들이 불황을 극복하고자 생산능력을 일부 축소하는 방안들을 내놓는데 일본은 오히려 늘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일본의 과거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간과한다면 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의 성공적 회복은 보장하기 힘들 것이며 결국 미래에 중국과 전 세계 조선시장의 1~2위 자리를 다투겠다는 기대는 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 조선해양산업이 현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당 조선소들이 새로이 시작하는 마음으로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주위에서는 일본의 사례와 같이 해당 기업의 재무제표만 보고 구조조정의 당위성을 외치는 일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조선해양산업체들과 연계된 기자재산업 등과 같은 대규모 후방산업, 수많은 협력업체와 근로자들의 미래, 한해 2000명 이상 쏟아지는 대학 전공 졸업자의 미래도 반드시 구조조정 안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