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

강원도 태백 금대봉에 있는 검룡소. 한 겨울에도 물이 힘차게 용솟음친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그게 무엇이든, 어느 곳이든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길은 가슴 설레는 과정이다. 단어 자체에서부터 오랜 세월 고인 시간의 향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여행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행복은 더 커진다. 강(江)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 역시 그런 설렘의 고갱이를 선물한다.

지난 겨울에는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儉龍沼)에 다녀왔다. 강원도 태백 금대봉에 있는 검룡소를 만나려면 산을 한참 올라야한다. 눈이 쌓인 한 겨울에는 만만찮은 과정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얼어붙은 길을 위태롭게 걸어 올라갔다. 몇 번 넘어질 고비를 넘긴 끝에 도착한 검룡소. 감탄사는 그렇게 결정적일 때 쓰기 위해 아껴둘 일이다. 아!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맹렬한 추위 속에서도, 소(沼)에서는 맑은 물이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금대봉 기슭에 있는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검룡소에서 다시 용솟음치는 것이라고 한다.


암반을 열고 그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물은 신비로웠다. 사계절 내내 9도(℃)를 유지하는 물이 하루 2,000~3,000톤(t)씩 분출한다고 한다. 그 물이 힘차게 흘러내려 소 바로 아래에 폭포를 이뤘다. 겨울이 무색하게, 바위마다 파란 이끼가 성성하게 돋았다. 물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오랜 시간과 물의 공세를 못 이긴 암반이 구불구불 길을 내주었다. 그렇게 흐르는 물줄기가 용이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검룡소라고 했다든가. 아니, 물이 솟아 나오는 굴 안에 검룡이 살고 있다 해서 검룡소가 됐다는 전설이 더 그럴듯하다.

용이 살고 있든, 아니면 미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든, 검룡소 앞에 서면 엄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물이야말로 이 땅의 뭇 생명들을 싹 틔우고 키워내는 근원이 아니던가. 이 물이 흐르고 흘러 정선의 골지천과 조양강을 이루고 단양·충주·여주를 거쳐 경기도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난 뒤 서울을 지나 서해로 빠져나간다. 먼 바다를 떠돌다 모천(母川)으로 회귀한 연어처럼 감동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경건해진 마음을 물에 실어 대처로 보내고 몸은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태백시의 황지. 푸른빛이 신비롭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여름이 시작될 무렵 다녀온 곳은 태백의 황지(黃池)였다.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다. 검룡소가 산 속에 있는 반면 황지는 태백시의 한 가운데 있다. 원래의 못은 현재보다 두 배쯤 컸고 주변에는 숲이 울창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인근에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서 고즈넉한 맛은 사라졌다. 그나마 주변을 공원으로 가꿔놓아서 다행이다.

황지 역시 신성한 못이다. 수온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져도 얼지 않으며 아무리 큰 홍수나 가뭄이 닥쳐도 수량이 줄거나 넘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둘레 100m 정도 되는 연못 한가운데에서 하루 5,000t의 물이 솟아오른다. 연못은 상지·중지·하지로 나누어져있다.

황지를 더욱 인상 깊게 해주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다. 태백시는 연못 주변에 전설을 형상화한 구조물들을 세워놓았다. 전설의 내용은 낯설지 않다.

옛날에 황부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노승이 시주를 받으러 왔는데 황부자는 곡식 대신 쇠똥을 던져주었다. 이것을 본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쌀 한 바가지를 시주했다. 그러자 노승이 며느리에게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려거든 날 따라오라”며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다짐 받았다. 노승의 뒤를 따르던 며느리가 지금의 도계읍 구사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며느리가 노승의 당부를 잊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돌이 되고 말았다. 황부자네 집은 땅 속으로 꺼져 연못이 되었고 황부자는 큰 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생긴 연못이 바로 황지다.

전설은 단지 옛날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여행을 풍요롭게 해주는 양념 같은 존재다. 평면의 풍경 속에 사람을 세워 숨결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황지를 찾아간 날도 그랬다. 전설을 한 올씩 새기며 탑돌이라도 하듯 연못 주변을 걸었다. 신비로울 정도로 푸른빛의 연못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려 한참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