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남편 등이 새우처럼 굽었다

신연두의 시집 원고를 읽어가면서 항상 푸른 초목에 관심을 두고 있는 자연주의자이자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자애로운 인간주의자가 차려준 한 권의 풍성한 식탁에 앉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시집이 숲과 나무, 꽃과 사람, 바다와 기억, 회고와 소망으로 가득 차서 마음이 푸르러지고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신연두의 시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는 ‘숲속의 행진곡’이다. 숲을 자세히 관찰하여 바람에 반응하는 각각의 모습을 활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사물의 관찰을 통해 발견에 이르는 시의 원리를 체득하는 것이다. 우아하게 둥둥 떠 있는 백조의 발이 물속에서 수없이 움직이듯,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고요할 것 같은 숲도 숲 속에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면 무언가 자기 역할들을 충실히 하고 있다.


아름다운 외면의 모습은 부지런한 내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시인이라는 관찰자만이 찾아낼 수 있다. 고요한 숲도 마찬가지다. 초목 하나하나가 자신의 역할을 분주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풍성한 숲을 유지하는 것이다. 시인은 관찰자이다. 관찰자인 신연두는 숲에서 이러한 만물의 원리를 발견하고 있다.

신연두는 196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최근 첫시집 ‘이슬의 어원’을 냈다. 신연두 시의 제재적 특징 중에 하나는 가족이다. 아버지 어머니에서부터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올케, 남편까지 그와 인연이 된 가족들이 시 속에서 의미 있고 행복하게 자리한다. 가족 중에서 형상이 가장 잘된 시는 남편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연민, 안타까운 상념에 잠기는 ‘새우등’일 것이다.

동창회를 다녀온 남편 얼굴은 그리 밝지가 않다
발그레한 모습은 벌써 취한 눈빛이 역력하다
잠이 든 남편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니 영락없는 새우등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뒷덜미에 삶의 애환이 새우등처럼 굽어 있지 않은가
때론 폭풍우가 걷잡을 수 없이 그의 가슴을 내리쳐
고추보다 맵게 뿌려졌을 것이다
(중략)
습관적으로 마신 술은 단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따라 잠자는 모습이 낯설기만 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욕심 없는 마음이 긴 상념에 젖어드는 깊은 밤이다
- ‘새우등’ 부분


가계를 짊어지고 수십 년을 버티며 살아오느라 그 무게에 등이 새우처럼 굽은 것이라는 화자의 상상이다. 삶의 역경을 지나온 남편의 자는 모습이 새삼 낯설다. 이런 낯섦은 대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화자는 이제 가정이 편안해져 아무런 걱정도 욕심도 없지만, 시적 대상에 대한 상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새우등을 하고 자는 남편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애틋하면서도 따뜻하고 사랑스럽고도 자애롭다.

◇이슬의 어원=신연두 지음. 모아북스 펴냄. 152쪽/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