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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도피안사에서 평화를 구하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8.01.2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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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달력이 바뀌었다. 새로 벽을 차지한 달력의 숫자들 역시 돌아보는 법 한번 없이 달려 나간다. 시간이 서두르니 사람도 덩달아 숨 가쁘다. 얼떨결에 뒤따라가다 돌아보면 잠시 아득해진다. 대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모든 게 덧없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훌쩍 도시를 벗어나볼 필요가 있다. 멀든 가깝든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을 찾아가 쉼표 한 번 찍고 돌아올 일이다.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철원평야를 가로질러 가는 길. 멀리 산들이 농담(濃淡)을 앞세워 인생길의 원근(遠近)을 가르친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화개산에 터를 잡은 사찰, 도피안사로 가는 길이다. 짧은 여행에 굳이 도피안사를 선택한 것은 이름의 유혹 때문이었다. 그곳에 가면 번뇌의 고리를 한 칼에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도피안(到彼岸)… 그 심오한 안쪽을 들여다 볼 수 나로서는, 피안에 이른다는 말이 고통의 이쪽 언덕에서 고통 없는 저쪽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일 거라고 문자적 해석을 할 뿐이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좋았다. 도피안사에 가면 피안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줄 것 같았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신 도피안사 대적광전/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신 도피안사 대적광전/사진=이호준 여행작가


비무장지대(DMZ)가 지척인 도피안사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절집처럼’ 고요하다. 계단에 서서 속세에서 지고 온 먼지를 털어내며 차안과 피안을 다시 생각한다. 절 마당에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느티나무다. 600년을 살았다는 이 나무는 시간을 벗듯 껍질을 벗고 있다. 저 껍질들이야말로 피안으로 가기 위해 벗어던지는 번뇌일지도 모른다. 아니, 느티나무 자체가 피안으로 안내하는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절은 규모가 크지 않다. 그래서 더욱 정이 간다. 3층 석탑을 지나 대적광전으로 간다. 이곳에는 국보 제63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 예를 올린다. 철불에서는 위세가 느껴지지 않는다. 불안(佛顔) 전반에 어린 은은한 미소는 이웃집 아저씨를 보는 듯 친근하다. 걱정 같은 건 다 내려놓고 가라며 편안하게 웃는다.

요사채 마루에 앉아서 듣는 독경 소리가 귀에 순하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도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도 괜찮다, 괜찮다, 등을 두드려준다. 저잣거리는 날마다 저리도 시끄러운데 부처의 누리는 이렇게 평화롭구나. 누군들 이곳이 한 때 전쟁터였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까. 물에 물감 번지듯, 나른하게 몸을 감싸는 평화 속으로 마음의 응어리들이 조금씩 풀어져 내린다.

도피안사에서 내려와 조금 더 북쪽 야산에 자리 잡은 조선노동당 철원군 당사 건물로 간다. 철원은 전쟁과 분단을 상징하는 땅이다. 1만7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수없이 주인이 바뀌었다는 백마고지 전투 이야기가 여전히 진행형처럼 떠돈다. 북에서 파내려온 땅굴이 있고 환청처럼 포성이나 총소리가 들리는 땅. 그래서 더욱 평화에 대한 염원이 간절한 곳이다.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조선노동당 철원군 당사 건물/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조선노동당 철원군 당사 건물/사진=이호준 여행작가

노동당 철원군 당사는 이곳이 북한의 점령지였던 1946년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지었다. 건립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로부터 강제 모금을 하고 노동력도 동원했다고 한다. 3층짜리 건물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파손돼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외벽에는 전쟁의 상흔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지 곳곳이 총탄자국이다. 핏줄끼리 총구를 겨누고 죽이고 그 시신을 밟고 전진하고 후퇴하고… 상상으로도 그 자체가 지옥도다. 불과 6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렇게 상처를 입었는데도 건물은 비교적 단단하게 시간의 침식을 견디고 있다.

삭막한 시멘트 기둥에 뿌리를 내린 풀들에게서 안도를 읽는 순간, 번갯불 같은 생각 하나 뇌리를 관통한다. 아! 전쟁과 평화가 남남이 아니구나. 사람 스스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다치고 두려워하는 일란성 쌍둥이구나. 평화가 가득한 도피안사와 전쟁의 잔흔이 고스란히 남은 노동당사가 가르쳐준 것이다. 여전히 본질을 알 수는 없지만, 차안과 피안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애써 강을 건너 닿으려 하지 않아도 우리는 늘 이 언덕과 저 언덕을 오가고 있는 건 아닐까. 번뇌가 내 안에 있다면 해탈 역시 나로서 이뤄질 테니. 확실한 것은 누구도 내게 번뇌를 심어준 적이 없다는 것. 스스로 파종하고 키운 것이다.

싸늘한 겨울바람이 남아있던 통증을 날려준다. 저자에서 지고 온 상처도 천천히 아물어간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도피안사에서 평화를 구하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1월 20일 (00:27)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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