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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위의 편지]산수유 흐드러진 ‘띠띠미 마을’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8.04.0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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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꽃이 흐드러진 띠띠미마을.
산수유꽃이 흐드러진 띠띠미마을.

봄을 봄답게 장식해 주는 건 두 말 할 것도 없이 꽃이다. 그래서 흔히 꽃을 봄의 전령이라고 부른다. 달력이 넘어가고 날이 따뜻해져도 사람들은 꽃이 피어야 온전한 봄이 왔다고 믿는다. 그중 봄을 여는 대표적인 꽃들을 꼽는다면 무엇 무엇이 있을까? 맨 먼저 매화가 생각나고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등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잎을 열어 강토를 환하게 수놓는다. 여러 꽃 중에서 내가 가장 반기는 건 산수유다. 찬바람이 채 물러가기도 전에 피어 초봄을 노랗게 장식하는 꽃. 강렬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습자지에 먹물 스미듯 천천히 번지는 꽃….

전국에는 산수유 명소가 몇몇 곳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 전남 구례 산동면 일대. 이곳은 수령 300년 이상 된 산수유나무들이 계곡과 마을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국내 최대 산수유 산지인 이곳에는 11만 그루가 넘는 산수유나무가 있다고 한다. 경북 의성 사곡면 화전리도 산동에 못지않은 명소로 알려져 있다. 산수유 마을로 불리는 이곳에는 약 3만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경기도 이천 백사면의 산수유 마을과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일대의 산수유 마을 역시 잘 알려져 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산수유 마을은 경북 봉화의 ‘띠띠미마을’이다. 이곳은 다른 산수유 명소보다 나무의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고풍스런 집들과 산수유나무들이 어울려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꽃이 한창 필 때 그곳에 가면 마치 선경 속에 들어선 것 같다. 띠띠미마을의 공식 명칭은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두동마을. 하지만 띠띠미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어원에 대해 여러 말이 있지만 뒷마을이라는 뜻의 ‘뒷듬’이 ‘뒤뜨미’로, 세월 따라 ‘띠띠미’로 굳어졌다는 설이 가장 그럴 듯하다.

띠띠미마을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근까지만 가면 산수유가 알아서 안내해 주기 때문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가로수까지 산수유기 때문에 고민할 것 없이 노란 꽃만 따라가면 된다. 마을은 세상의 모든 길이 끝나는 곳에 있다. 봉화의 진산이라는 문수산 자락 중에서도 마지막 골짜기다.

띠띠미마을은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노인이 젊은 소를 길들이는 장면을 이 마을에서 촬영했다. 마을이 처음 생긴 것은 400여 년 전이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던 삼전도의 치욕을 참지 못한 두곡(杜谷) 홍우정(洪宇定) 선생이 모든 걸 버리고 은둔을 위해 들어온 게 마을이 생긴 계기가 되었다. 그때는 다래 덤불로 뒤덮인 골짜기 중의 골짜기였다고 한다.

두곡 선생이 정착하면서 심은 게 바로 산수유나무였다. 그는 자손들에게 “산수유만 잘 가꾸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니 공연한 세상일에 욕심을 두지 말고 휘둘리지 마라”고 일렀다고 한다. 그 뒤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두곡 선생이 심은 산수유나무 두 그루가 지금도 마을을 흐르는 개울 옆에 살아 있다고 한다.

띠띠미마을에는 5000그루 이상의 산수유나무가 있다. 그중 상당수는 100년 이상 된 것들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 보면 여기저기서 노란 구름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것 같다. 누군가 마을을 통째로 노란 물감에 넣었다 꺼내놓은 것 같기도 하다. 노란색이라도 같은 노란색이 아니다. 개나리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하며 우쭐대는 원색에 가깝다면, 산수유는 연한 파스텔 톤으로 은근하게 풍경을 물들인다. 밭둑도 개울도 고택의 담장도 무너져가는 폐가도 꽃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다. 사람의 집도 산수유 꽃도 서로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저 어깨 겯듯 어울려 한 계절을 날 뿐이다.

밭두렁을 따라 걷다가 과수원으로 접어들면 곳곳에 달래‧냉이 등 봄나물이 아우성처럼 솟아오른다. 어디쯤에는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가 있을 법도 하련만 동네는 비어있는 듯 조용하다. 마을을 이리 저리 헤매고 다녀도 눈 마주칠 사람 하나 없다.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많고, 그나마 남은 사람들도 노인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곳곳에 빈집들도 눈에 띈다.

한번 찾아간 사람은 이 마을을 쉽사리 떠나지 못한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눌러 살 수도 없으니 가지고 있는 시간을 모두 쓰고 떠나는 수밖에. 봄을 음미하듯 천천히 걷다보면 ‘너’도 ‘나’도 산수유 꽃그늘 속에서 하나가 된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산수유 흐드러진 ‘띠띠미 마을’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4월 6일 (17:14)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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