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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이 사랑한 이 ‘가수’…“내 노래에 ‘품격’ 있는 듯”

[인터뷰] 北방문 4회, 南대통령도 따라부른 국민송의 주인공 최진희…트로트에서 풍기는 클래식적 분위기에 ‘호응’

문화를 일구는 사람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입력 : 2018.04.18 06:30|조회 : 8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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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최진희는 북한에만 4번 다녀온 최다 북한 방문 가수다. 그는 여러 번 다녀온 방북길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트로트 곡에서도 클래시컬한 분위기에 젖고 싶은 욕망이 넘친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가수 최진희는 북한에만 4번 다녀온 최다 북한 방문 가수다. 그는 여러 번 다녀온 방북길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트로트 곡에서도 클래시컬한 분위기에 젖고 싶은 욕망이 넘친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올해 환갑이…”이라는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에이 무슨, 아직 5학년 2반이에요”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1984년 국민 송 ‘사랑의 미로’로 인기를 얻은 가수 최진희는 30년 넘게 변함없이 뛰어난 가창과 절대 동안을 자랑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북문제를 문화적으로 해결할 때 가장 먼저 수소문의 대상이 되는 가수가 그다. 김일성 주석 생전 당시부터 남한에서 얻은 ‘사랑의 미로’ 인기는 북한에서도 그대로 유입되며 ‘북한 국민송’으로 불리기 일쑤였다.

김일성 사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까지 ‘최진희 신드롬’은 이어졌다. 덕분에 최진희는 최근 방북을 포함해 4번이나 북한을 다녀왔다. 우리 예술단의 이번 방북에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감사하다”는 개인적 칭찬을 들은 유일한 가수이기도 하다.

“제 생각에 ‘사랑의 미로’는 김정일 위원장이 딱히 좋아했다기보다 북한 주민들이 거의 다 아는 노래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직접 가서 보니, 북한의 외국 민요집에도 이 노래가 실려있고 고려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연변의 북한 식당에서 자주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또 이 노래를 여러 버전으로 개사한 경우도 있었어요.”

가수 최진희.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가수 최진희. /사진=김고금평 기자
‘사랑의 미로’에는 독특한 미학이 숨어있다.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성, 트로트 풍의 한국적 정서 같은 특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최진희는 이를 ‘클래식’이란 단어로 설명했다. “사실 제 노래가 트로트이긴 한데, 클래식 같은 분위기가 많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 수월했을 것 같고, 또 그들(북한) 입장에선 평소 듣던 트르트와는 사뭇 다른 세련된 분위기나 품격 같은 걸 느끼면서 새로운 곡에 대한 허기를 달래지 않았을까 싶어요. 클래식이 주는 서정적 분위기와 이전에 듣지 못하던 새로운 느낌이 중복적으로 전달됐다고 할까요?”

자신이 노래가 아닌 ‘현이와 덕이’의 노래 ‘뒤늦은 후회’를 불러달라는 주문을 북측으로부터 받았을 때, 처음에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고 했다. “왜 이걸 나한테 요구하지?” “또 다른 유명한 내 노래도 많은데…”하며 의아함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지만, 막상 부르고 난 뒤 쏟아진 관객의 박수와 뒤풀이 장소에서 본 풍경을 통해 막힌 실타래가 하나둘씩 풀렸다.

“북측에서 제 스타일을 이미 안 거예요. 유튜브를 통해 ‘뒤늦은 후회’를 보고 제 식대로 연습했는데, (장)덕이와는 다른 창법과 리듬으로 ‘클래식’하게 부를 걸 예상했었던 것 같아요. 뒤풀이에서도 북측 사람들이 이 노래를 ‘팝페라 버전’으로 부르는 데 그때 알았죠. 제게서 클래식한 분위기를 얻고 싶어 했다는 걸.”

가수 최진희.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가수 최진희. /사진=김고금평 기자
뒤풀이 만찬장에선 삼지연관현악단 지휘자가 ‘뒤늦은 후회’를 꼭 연주해보고 싶다며 ‘같이 부르자’고 제안도 했다고 한다. 숨겨진 곡의 뒤늦은 인기에 힘입어 최진희는 이 노래를 다시 불러 이번 주에 음원으로도 발매한다.

최진희의 클래시컬한 감성은 남한 정상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랑의 미로’가 나온 뒤 그는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수시로 청와대에 드나들었다고 회고했다. 북한 고위 간부가 남한에 내려왔을 때도 청와대에 초청됐다. 심지어 노 대통령의 경우 자신이 다니는 이발소에 들어가면 ‘사랑의 미로’가 자동으로 나왔다고 한다. 최진희는 결과적으로 남북 정상이 모두 선호하는 가수로 떠오르며 정치적 난관의 문화적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제가 어떤 보탬이 돼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에요. 사명감과 자부심이 컸죠. 노래하지 않는 최진희였다면 감히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겠어요?”

북측에선 북한 노래를 ‘최진희 느낌’으로 불러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최진희는 귀띔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관리. 35년간 한결같이 목청을 유지하지 않고 자기 관리에 소홀했다면 교류의 선두주자로 나설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수 최진희가 늦은 인터뷰 시간에도 머니투데이 신문을 펼쳐 뉴스를 확인한 뒤 활짝 웃으며 자신의 음악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가수 최진희가 늦은 인터뷰 시간에도 머니투데이 신문을 펼쳐 뉴스를 확인한 뒤 활짝 웃으며 자신의 음악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여러 히트곡을 가지고 있어도 자기 관리에 실패해 순식간에 사라지는 가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 개의 히트곡이라도 생명력을 가지려면 자기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하죠. 저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살지는 못했어요. ‘건강하게 절제하면서 살자’가 어느새 제 인생의 모토가 됐죠. 그리고 남북 교류에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최진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일은 하지 말자고 다짐도 여러 번 했고요.”

최진희는 성공한 자신의 인생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했다.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 잡은 게 첫 번째고 행운이 따랐던 점이 두 번째, 팬들의 사랑과 지지가 마지막이다. 6학년이길 거부하는 그의 젊음과 맑은 정신이 어딘가 모르게 ‘클래식’적이었다.

김고금평
김고금평 danny@mt.co.kr twitter facebook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대로 사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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