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조홍근의 내 몸 건강 설명서] 먹으라는 겁니까, 먹지 말라는 겁니까?

조홍근원장사진

조홍근원장프로필

약 일주일 전, 신문과 방송을 약간 시끄럽게 만든 의학기사가 있었습니다. 심장과 뇌혈관질환이 없는 당뇨병 환자가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복용하지 않는 환자보다 중풍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통 아스피린 복용 이유는 뇌경색과 협심증 등의 발병 예방인데, 오히려 아스피린을 먹고 중풍에 걸렸다니 놀랄 일입니다. 게다가 당뇨병 환자는 일반인보다 뇌경색과 심장병 위험이 훨씬 높아 일부러 아스피린을 먹는데, 이런 기사에 놀라고 걱정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그 기사 때문에 아스피린을 끊지는 마세요.


국민건강보험의 데이터를 이용해 진행된 한 연구가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보험공단 데이터에서 2005~2009년 사이에 당뇨를 앓은 약 400만 명의 자료를 수집하였고 거기서 57만 명을 추려내어 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를 제외, 목표 기간 중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던 당뇨 환자 16000명과 아스피린을 복용하지 않던 당뇨 환자 245,000명을 추렸습니다. 두 경우를 1대 1로 비교하기 위해 비교할 만한 데이터가 온전하게 갖춰진 경우만 추려 양쪽 각각 15,849명을 최종 선정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당뇨병을 진단 받은 환자 중 2006년 1월부터 2007년 12월 31일까지 아스피린을 처방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선정하고 그들이 2009년 12월 31일까지 뇌경색이 발생한 건수를 조사한 것입니다.

그 결과, 아스피린 복용 당뇨 환자들 중에서는 2년 동안 뇌경색이 발병한 사람이 340명인 반면 아스피린 비복용 환자에서는158명이 뇌경색을 경험했습니다. 양쪽 군의 위험도 비율은1.97로 산출되었는데 이는 아스피린 복용이 당뇨 환자에게 있어 뇌경색 발생을 97퍼센트 증가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아스피린이 몹쓸 약이 되는 순간입니다. 여기까지가 신문과 방송에 등장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논문 해석은 매우 위험합니다. 적어도 의사와 전문가 그리고 의학 저널리스트는 이러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여 건강을 해칠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에는 환자를 직접 보고 치료하는 임상의사, 전문가의 직관과 배치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처럼 상식과 직관에 상반되는 연구결과는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아스피린은 혈전 방지약입니다. 아스피린은 혈소판 기능을 비가역적으로 망가뜨림으로써 혈소판이 피를 응고시키는 작용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아스피린의 부작용에는 예기치 않은 위장관 출혈, (흔하지는 않지만) 뇌출혈이 있습니다. 뇌출혈과 반대점에 있는 뇌경색은 피가 굳어 생긴 피떡이 뇌혈관을 막아 뇌세포를 죽이는 질병입니다. 그런데 출혈을 일으킬 정도의 약이 어떻게 반대로 혈전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이 논문의 결론은 아스피린의 기전과 완전히 배치되는 주장을 합니다.

아스피린이 뇌경색을 일으킨 것일까요 아니면 아스피린을 복용한 환자의 상태가 뇌경색을 유발한 것일까요? 혼란변수가 충분히 보정되었는가? 통계 용어 중 ‘혼란변수confounding factor’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의도치 않게 결과에 영향을 주는 인자를 뜻합니다. 술과 건강에 관한 통계가 유명합니다.

술을 많이 마실수록 사망률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술을 한두 잔 마시는 사람보다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의 사망률이 더 높습니다. 그러면 건강을 위해 술을 마셔야만 할까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건강이 나빠져 못 마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았던 것은 술을 마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술을 마시지 못할 만큼 이미 건강이 나빴기 때문입니다. 술과 사망률의 관계를 보고 싶었지만, 대상자의 건강상태가 혼란변수로 작용한 상황입니다.

또 다른 유명한 예로 체질량지수(BMI)와 사망률의 관계입니다. 체질량지수가 너무 낮으면 사망률이 높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역시 체질량지수가 낮은 이유는 영양실조이거나 다른 질환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체중이 낮아서 빨리 죽는 것이 아니라, 체중이 낮은 원인 때문에 빨리 죽는 것입니다. 이런 혼란변수를 잘 보정하지 않으면 연구결과는 엉뚱하게 도출됩니다.

논란을 일으킨 아스피린 연구의 목적이 아스피린과 뇌경색의 연관성이라고 한다면 기초 데이터에 뇌경색을 일으킬 수 있는 기본적인 위험인자가 다 포함되어야 합니다. 뇌경색의 위험인자는 혈압, 흡연, 고지혈증 그리고 당뇨병입니다. 그러나 이 연구에는 많은 것이 빠져 있습니다. 혈압 조절 정도, 고지혈증 조절 정도, 당뇨병 조절 정도가 없는 것은 물론, 흡연의 정도나 유무도 없습니다. 뇌경색을 결정짓는 가장 주요 위험인자인 흡연 관련 데이터가 아예 없는 아스피린과 뇌경색의 상관관계는 무의미할 뿐입니다.

건강공단 데이터에는 질병코드와 약물만 기록되기 때문에 의사가 차트에 적는 흡연의 유무는 물론 혈압 조절 정도, 콜레스테롤 수치, 혈당 수치는 알 수 없습니다. 환자의 개인정보이므로 함부로 유출할 수 없고, 이런 빅데이터는 누군가 악용할 수 있으므로 아주 제한적인 정보만 기록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데이터로 연구하면 제한적인 정보로 인해 엄청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사는 왜 당뇨병 환자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했을까? 전체 당뇨병 환자의 약 6%가 아스피린을 처방 받았습니다. 의사는 그들에게 왜 아스피린을 처방했을까요? 여기서부터는 상상력을 동원해봅니다. 대부분의 당뇨 환자에게는 당뇨약, 고혈압약, 고지혈증약이 처방됩니다. 이 세 가지 병이 다 있거나 일부만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보기에 이 환자가 뇌졸중이나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면 가장 비용 부담이 낮고 널리 복용되는 예방약인 아스피린을 투여합니다.

연구자들도 인정했듯 이 연구에는 비만 정도, 혈압, 고지혈증 정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흡연 유무입니다. 흡연자인 당뇨병 환자는 뇌졸중, 심장병의 위험이 아주 높기 때문에 아스피린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연자는 뇌졸중, 심장병에 잘 걸립니다.

이 연구의 데이터는 이렇게 재해석해야 합니다. “아스피린을 추가로 복용해야 할 만큼 위험하다고 여겨졌던 사람이 결국 위험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이 연구가 유용하려면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할 만큼 위험했다고 의사가 생각한 환자들이 어떤 유형인지 밝혀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숨은 위험요인을 발견, 사전에 조절해서 예방할 수 있습니다. 아스피린을 추가로 썼는데도 막지 못한 그 위험한 상황은 무엇이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흡연이 가장 중요한 인자 같습니다.

?혈관병의 연구자로서 전문가로서 이 논문을 보면 의문이 생깁니다. 흡연 관련 데이터 없이 뇌경색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빅데이터는 단면적인 사실, 연구를 촉발할 수 있는 결과 (hypothesis generating)는 보여주지만 기존의 정설로 자리 잡은 치료법을 바꿀 만한 설득력과 힘은 없습니다. 주의 깊게 다루어지지 않고 세심하게 해석되지 않은 빅테이터는 큰 실수(big mistake) 야기합니다.

?이 논문 관련 뉴스를 접하고 당뇨병 환자들이 당장 아스피린을 끊거나 불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스피린이 뇌경색증의 위험을 높인다는 주장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아스피린이 뇌경색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아스피린을 먹을 정도로 위험했던 사람들이 뇌경색에 걸린 것입니다. 아스피린은 ‘원인(maker)’이 아닌 ‘표식(marker)’이었던 것입니다.걱정하지 마세요. 불안하면 주치의와 상의하세요.그렇다고 아스피린을 남용해서도 안 됩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 의사와 상의해서 드세요. 심장병과 뇌졸중 경험이 있는 환자는 꼭 복용해야 합니다.

극약도 제대로 먹으면 보약이 되고, 어떤 좋은 약도 필요 없는데 먹으면 독약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