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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진령군과 개에게 벼슬 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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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경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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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12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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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49 – 진령군 : 부정부패의 고리, 비선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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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역사에서 악마의 디테일은 정사보다 야사에 곧잘 드러난다. 올해 초 종영한 드라마 '장사의 신'에 등장한 무당 진령군도 '매천야록' 등에 소개된 바 있다. 구한말의 지식인 황현은 이 책에서 진령군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명성황후가) 몸이 좋지 않을 때 무당이 아픈 곳을 만져 주면 증세가 줄어들었다. 날마다 총애가 더해지니 무당의 말이라면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중략) 중전이 무당을 '진령군(眞靈君)'으로 봉했다. 무당은 아무 때나 대궐에 나아가 임금과 중전을 뵈었다."

진령군은 1882년 임오군란 당시 궁궐에서 도망쳐 충주에 숨어 있던 명성황후에게 접근했다. '정적' 대원군이 국장을 선포하는 바람에 발이 묶인 그녀였다. 절망에 빠진 왕비에게 무당은 환궁 날짜를 점쳐 주며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후 청나라가 개입하고 대원군이 중국에 끌려가면서 명성황후는 점괘대로 궁궐로 돌아갔다. 물론 무당도 함께였다.

1884년 갑신정변에 식겁한 왕과 왕비는 진령군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진령군은 비선실세로 국정과 인사에 개입했다. 높고 낮은 지방관들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조정 대신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부하기 바빴다. 진령군을 누이라 부르기도 하고, 수양아들을 자처하기도 했다. 무당의 아들 김창열은 버젓이 대신들과 자리를 나란히 했다.

진령군이 부린 ‘여우의 위세’는 당대 권력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뇌물 좋아한 고종 부부에게, 매관매직에 열중한 외척 민씨들에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하진 않았을 터였다. 국정의 탈을 쓰고 부정축재가 행해졌다. 신하들도 바로잡으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진령군에게 줄 서서 일신의 영달을 꾀할 뿐이었다.

비선실세는 국가기강을 흔들었고, 조선은 부정부패로 물들었다. 나라살림을 맡은 관리가 세곡선(稅穀船 : 세금으로 낸 곡식을 실어 나르던 배)을 통째로 빼돌리고는 침몰했다고 거짓보고를 올렸다. 권세가의 자제들은 돈을 써서 과거급제를 사고, 벼슬을 쇼핑했다.

부정부패는 조정과 민간,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만연했다. 충청도에 '개 감역'이 생긴 사연이 재미있다. 어느 부유한 과부집에 '복구'라는 개가 있었다. 힘 좀 쓰는 길손이 지나다가 담장 너머 개 부르는 소리를 듣고 관아의 감역(監役 : 종9품) 벼슬에 그 이름을 올렸다. 과부에게 아들이 있는 줄 알고 대가를 요구하려 한 것이다.

그 시절엔 진령군 말고도 비선실세가 넘쳐났다. 명성황후의 양오빠 민승호에게는 젊은 후처가 있었다. 그녀는 민승호가 죽은 후에 아들을 낳았는데 불륜의 씨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세간에서는 그 아이를 꿈속에서 남편을 만나 얻었다고 하여 '몽득(夢得)이'라 불렀다. 몽득이 엄마도 명성황후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했는데 고관대작들이 깍듯이 떠받들었다.

구한말의 비선실세는 나중에 죄상이 드러나도 제대로 처벌하기가 어려웠다. 부정부패의 공범들이 정관계 요로에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94년 7월 안효제가 진령군을 죽이라고 상소하자 승정원에서는 임금에게 올리지 않고 기각했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진이 단체로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1894년은 동학농민항쟁과 청일전쟁이 터진 해였다. 나라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고 백성의 저항이 들불처럼 번지는데, 조정에선 국정농단의 진상을 외면하고 덮어줬다. 결국 진령군에 대한 처벌은 잠시 옥살이를 시키고 재산 일부를 압수하는 선에서 끝났다.

‘매천야록’의 저자 황현은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를 잃자(경술국치)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망국을 부른 악마의 디테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황현이 묘사한 비선실세는 뇌물, 매관매직, 횡령 등 부정부패의 고리였다. 책 속의 한 구절이 유독 눈에 밟힌다.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그르치고 난 다음에 남들이 들이친다(國必自伐而後人伐之)."

권경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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