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통합검색

[광화문]'저주받은 걸작'을 만나고 싶다

머니투데이
  • 배성민 기자
  • 2019.12.04 03:1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글자크기조절
  • 댓글···
대중음악과 영화, 출판, 문학 등의 르네상스 시대로도 꼽히는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있었지만 최근에는 듣기 어려운 어휘가 있다. ‘저주받은 걸작’이 바로 그것이다.

공들여 잘 만들고도 소비자(독자, 관객, 구매자)들의 낙점을 받는데 실패한 작품이 ‘저주받은 걸작’이다. 너무 어려워 대중성이 없는 경우도 있고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처음부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일도 있다.

사실 저주받은 걸작이 생길 일이 잘 없다는게 요새 문화계 분위기다. 시장에 풀려 악플이든, 냉정한 평가든 저주를 받는 것조차 행운이라는 회한조차 배어있다.

주말 사이 가족들이 영화를 보러 갔다. ‘남들도 다 봤다는데’ 별 생각 없이 ‘겨울왕국2’을 선택했다. 겨울왕국 영화티켓을 구하기는 쉬웠지만 지난주에 그 영화를 본 이들이 또 극장을 찾았다면 다른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 상영 일수) 보장 운동을 펼쳐왔던 정지영 영화감독에게도 지난달은 뼈아플 만 하다. 그는 최근작 ‘블랙머니’(11월13일 개봉)로 1주일여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초반 흥행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겨울왕국2’ 때문에 순식간에 상영 스크린수가 1/3로 줄어드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관객수는 200만명 초중반에 머무르고 있다. 상영 초기 괜찮은 흥행 성적에도 스스로 스크린수를 제한하겠다는 자정 움직임이 무색해지는 일을 겪은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으로 실랑이가 잦은 아이는 가끔씩 음원을 사곤 한다. 주로 랩 음악을 고르지만 며칠 사이 ‘요새 순위가 좀 이상한데’라는 말을 자주 했다. 과연 얼마전부터 특정 가수들을 중심으로 음원 사재기 논란이 불거졌다.

베스트셀러 위주로 화제와 이슈몰이가 진행되는 출판계도 빼놓을 수 없다. 전 국민이 책을 읽는 그날까지를 외치던 TV프로그램이 미디어셀러를 양산하며 독서시장을 주름잡을 때 시장은 왜곡됐었다는 얘기가 많다. 지금도 셀럽에 의해 언급되는 책은 반짝 호응을 얻기도 하지만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스크린에 많이 걸리고 음원 차트 상위를 차지하고 많이 팔리는 책도 물론 좋은 문화상품일 수 있다. 하지만 남들은 무엇을 즐기며 무엇을 선택하고 있나, 이른바 ‘유행’에 극히 민감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선택의 기회마저 차단시킬 우려가 크다. 부익부 빈익빈 구조는 자연발생적인 시장 형성을 저해하고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종(種)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

전체 인구의 20~30%가 보는 정도인 ‘1000만 영화’가 1년에도 한두 편씩 꼭 등장하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올해는 ‘1000만 영화’가 벌써 4편(곧 1000만을 찍을 기세인 겨울왕국2까지 포함하면 5편) 나왔고 그때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제기됐다.

대표적인 저주받은 걸작 ‘지구를 지켜라’가 없었다면 장준환의 ‘1987’을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 초기작 ‘플란다스의 개’가 없었다면 흥행작 ‘살인의 추억’도 없었을 것이고 화성 연쇄살인범을 밝혀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칸 영화제 대상작 ‘기생충’도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헐리우드의 흥행 거장이 되기 이전 리들리 스콧 감독은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1982년)을 찍었다. 인간과 복제인간(리플리컨트)의 대결구도가 그려진 영화의 배경은 마침 2019년이다. 다양성이 거세된 현재는 어쩌면 햇빛이 차단돼 어둠만이 드리워진 영화 속 배경보다 더 암울하다.

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칼럼목록

종료된칼럼

오늘의 꿀팁

  • 날씨
  • 내일 뭐입지

많이 본 뉴스

법률N미디어 네이버TV
KB x MT 부동산 설문조사

포토 / 영상

머니투데이 SER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