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례 고개숙인 이재용…삼성 '4세 경영', '무노조 경영' 안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경영권 승계 논란과 노조 문제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이날 오후 3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자리에서다.

이 부회장은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다"며 "제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때부터 내려온 경영권 승계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에서도 이 부회장의 진정성과 함께 평소 지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서도 "언제든지 훌륭한 분이 있으면 경영권을 넘기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2015년 6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책임과 관련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데 이어 두 번째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코로나19 사태 등을 감안해 이 부회장이 직접 사과문을 읽기보다는 별도의 방안을 찾지 않겠냐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이날 연단에 선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지난 3월11일 경영권 승계 의혹과 노조 문제, 시민사회 소통 등에 대해 반성을 담은 대국민 사과를 권고한 이후 두 달 가까이 삼성 내부는 물론, 외부 전문가들까지 각계 의견을 폭넓게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직접 문구를 다듬으면서 조사 하나까지 넣고 빼며 모든 문구를 작성했다"고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이 부회장은 이날 "기술과 제품은 1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며 "이 모든 것은 저의 잘못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영권 승계 논란과 관련해 "이젠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 지탄을 받을 일을 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노사 문제로 재판을 받는 상황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전했다. 또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권고한 삼성 준법감시위에 대해서도 "저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 준법감시위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며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10분여 동안 사과문을 읽는 동안 연단에서 세 차례 나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이 부회장의 이날 사과는 사과로만 끝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고 밝힌 것은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지난해 10월25일 첫 공판 당시 질문한 '만 51세가 된 기업인 이재용의 비전과 선언'과 맞닿은 언급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며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윤택해지도록 하고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이날 대국민 사과를 계기로 이 부회장이 책임경영에 본격 시동을 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가장 피하고 싶은 논란들을 정면으로 돌파했다"며 "책임감 있는 기업인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향후 경영에서도 이 부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삼성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우리 사회도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