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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인국공 일자리 계급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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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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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인천국제공항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16세기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전쟁터’와 같은 인간사회의 자연상태를 말한 이 비유는 최근 벌어지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은 사측이 제대로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규직화를 추진했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은 불공정한 채용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아우성친다. 게다가 정치권에선 가짜뉴스 논쟁까지 벌어져 논란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다.

 공기업인 인국공만이 아니다. 민간기업인 현대위아, 포스코, 현대제철. 현대·기아자동차도 하청 근로자들의 원청 정규직 채용소송에 직면하면서, 정규직 전환 투쟁이 만인의 투쟁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본질은 분배정의의 문제...수천년 철학자들의 난제




 이번 논란의 본질은 우리 사회 불평등의 근원이 된 일자리 분배정의의 문제다.(가짜뉴스 논쟁은 논외로 한다. 본질을 흐리거나 왜곡하는 일부 가짜뉴스가 있지만 사실 일자리가 많다면 청춘들이 그런 것에 쉽게 현혹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는 수천 년 동안 정의(正義)의 문제를 다룬 수많은 철학자도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한 난제다.

 목적론적 세계관을 가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자의 ‘당연한 몫’을 여럿에게 나눠주는 것이 분배정의에 맞다고 했다. 여기서 당연한 몫이란 각자가 지닌 목적과 가치에 따른 몫이다. 그는 모든 것은 태어나거나 만들어질 때부터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맞을 때만 가치가 있다고 봤다.

 그의 철학을 따른다면 정규직은 정규직에 적합한 목적과 가치를 갖고 태어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옳다. 또 노예에겐 노예의 목적을 달성하는 ‘노예의 삶’이 주어지는 게 맞다. 계급과 노예제도를 정당화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배정의는 오늘날엔 맞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나 있을 법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계급’이 2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존재한다는 게 오히려 아이러니하다.




취준생+비정규직+정규직 행복 극대치=?




 이런 목적론적 정의론의 대항마로 등장한 것이 공리주의다. 공리주의의 대표자인 18세기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주창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맞는 분배를 해보자.

 현재 인국공 정규직이 약 1200명이고 추가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이 약 1900명,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 주십시오’란 청와대 국민청원에 찬성한 사람이 약 27만명이다.

 이들 세 무리의 ‘행복의 총량’이 최대가 되는 것이 정의라는 게 벤담의 생각이다. 이들 세 무리의 이해는 충돌하니 어느 한쪽이 좋으면 나머지는 좋지 않은 상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여파로 파이(먹거리)가 줄어든 기존 정규직의 ‘행복 감소분’이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늘어나는 ‘행복 증가분’보다 작을 때는 정규직화를 밀어붙이는 게 맞을까.

 직접적인 연관성은 많지 않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겪는 27만 취준생의 ‘행복 감소분’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행복 증가분’보다 더 커서 정규직화를 멈추는 게 정의로운 것일까.

 공리주의적 분배정의는 결국 수적, 행복총량 우위에 있는 다수의 정의로 소수의 희생 위에서 만들어지는 정의라는 측면에서 논란이 여전하다. 그래서 철학계에선 ‘다수의 정의’를 넘어서는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무지의 베일 뒤에서 찾은 역지사지가 해법




 ‘정의론’의 저자인 미국 철학자 존 롤스는 정규직 근로자도, 비정규직 근로자도, 취업준비생도 다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뒤로 들어가 이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라고 권한다.(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실업상태인지, 비정규직인지, 정규직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인국공 문제의 해법을 따져보는 게 ‘다수의 정의’에서 놓칠 수 있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찾는 길이라는 게 롤스의 제안이다.

 롤스는 ‘무지의 베일’에서 원초적 입장의 모두가 참여해 원칙을 정하고 최소 수혜자의 이익이 최대가 되도록 사회 정의의 기준을 정하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불평등은 용인될 수 있다고 봤다.

 정규직들은 ‘무지의 베일’에서 자신들이 비정규직이라면 저임금의 불안한 환경에서 근무하도록 스스로를 둘 수 있는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또 반대로 비정규직은 자신들이 정규직이었다면 자신들의 임금 일부를 줄여 정규직 전환자에게 나눠줄 수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은 자신들이 실직 상태인 취준생 입장이라면 ‘말 한마디’로 정규직이라는 위치에 놓이는 이 현상을 공정하다고 볼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취준생들도 자신들이 비정규직 위치에서 정규직 전환의 희망적 상황으로 바뀔 때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모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할 게 아니라 타인의 위치에서 역지사지를 해보면 답은 나온다.



정규직·비정규직 계급 없는 사회...유연한 노동시장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




 홉스가 말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이 전쟁터를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사회적 합의(계약)가 있어야 한다. 무지의 베일 뒤에서 상호 이해를 통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갈등을 없애고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니체의 말처럼 이기적 인간은 ‘힘에의 의지’로 남들보다 더 나은 삶으로의 상승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버리는 행동은 쉽지 않다.

 인국공과 같은 이런 논란을 줄이는 방법의 하나는 차별을 없애고 차이를 두는 것이다. 직업 내 계급화를 없애되 능력과 성과에 따라 임금에 차이를 두는 것이다. 계급을 없앰으로써 차별받는다는 불공정한 감정을 줄이고 능력에 따른 평가를 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정규직 중심 노동시장은 지나치게 경직됐고 정규직이라는 권력의 울타리는 철옹성 같은 계급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기업은 쉽게 채용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의 일자리만 만들어낸다. 비정규직이라는 자리는 정규직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 새로운 밑바닥 계급을 형성한 상태다.

따라서 이런 계급을 없앰으로써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아니라 마음대로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미국 직장인들은 모두가 비정규직이다(사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이 없다). 대신 직업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실업수당 등 사회안전망을 완벽히 갖췄다.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되 직장을 잃었을 때 국가가 실직자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주는 게 ‘일자리 분배정의’ 논란을 잠재우는 시스템의 완성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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