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속보
통합검색

죽은 긴즈버그와 산 트럼프[광화문]

머니투데이
  • 배성민 기자
  • 카카오톡 공유하기
  • 카카오톡 나에게 전송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2020.12.30 04:02
  • 글자크기조절
  • 의견 남기기
[AP/뉴시스]1993년 7월20일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워싱턴 연방항소심  판사가 당시 상원 다수당 민주당의 법사위원장으로서 인준 절차를 지휘할 조 바이든 상원으로부터 조언을 받고 있는 모습.
[AP/뉴시스]1993년 7월20일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워싱턴 연방항소심 판사가 당시 상원 다수당 민주당의 법사위원장으로서 인준 절차를 지휘할 조 바이든 상원으로부터 조언을 받고 있는 모습.
바이든과 트럼프.

올해 미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었던 두 인물을 꼽자면 단연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가른 예상밖 인물,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이 있었다.

조 바이든 당선인은 연초만 해도 힘을 받지 못 했지만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부각될수록 트럼프 대통령과의 1대1 승부는 어렵다는 비관론이 제기되면서 결국 낙점을 받았다.

이에 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탁월한 경제지표(실업률, 증시, 성장률 등)와 샤이 트럼프(드러내놓고 지지하지 않지만 결국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는 이들)를 기반으로 코로나19(COVID-19) 확산과 인종 차별 시위 등으로 여론조사에는 뒤지더라도 4년 전의 예상 밖 승리를 재현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었다.

운명을 가른 것은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보름여간이었다. 정확히는 9월18일 긴즈버그의 별세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확진이 알려진 10월2일까지가 그 기간으로 그 사이에는 9월26일 긴즈버그의 후임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지명식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로 지명을 연기해 달라는 당시 야권의 요구를 묵살하고 보수성향의 배럿을 지명했고 결국 인준을 이끌어냈다. 배럿 대법관 지명식으로 트럼프 진영은 기세를 올렸지만 이는 오히려 화근의 시작이었다. 백악관과 공화당 유력 인사들 200여명이 대거 참석한 지명식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졌고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확진된 것이 아니냐는 신빙성 있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은 뒤 2주 자가격리도 무시하며 유세장에 나서 건재를 과시했지만 부실방역을 상징하는 불안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 했다. 승부를 결정짓는 경합주는 바이든쪽으로 속속 돌아섰다.

코로나를 의식해 유세에 소극적이던 바이든은 결정적 한방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확진자 트럼프와 대조되며 안정감이 한층 부각됐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승부였지만 죽은 긴즈버그가 산 트럼프를 쫓았다고 할 만 하다.

바이든과 긴즈버그, 트럼프와 긴즈버그의 인연도 화제다. 1993년 긴즈버그가 대법관으로 의회 인준 청문절차를 거칠 때 바이든은 상원 법사위원장으로 청문회를 이끌었다. 재임기간 긴즈버그는 버지니아주 군사학교에 남자생도만 입학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뒤집었고 대학 입학 전형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 폐지에도 반대하는 등 주목받는 판결로 진보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긴즈버그는 트럼프가 4년전 대선에 첫 출마했을 때 공개적으로 트럼프 당시 대선후보를 ‘사기꾼’이라고 부르며 반대했다. 허풍가득한 사업가로 뉴욕 퀸스 출신인 트럼프를 브루클린 출신인 깐깐한 법률가 긴즈버그가 수십년간 알아왔던 인연도 작용했을 터.

트럼프 대통령이 정쟁 우려에도 긴즈버그 후임 대법관 임명을 강행한 것도 논쟁적이었다. ‘새 대통령이 취임 후 후임을 임명해달라’는 긴즈버그의 유언에 대해 트럼프는 유언이 민주당 지도부에 의해 조작됐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대법원의 보수화(진보 계열 대법관 3, 보수 6)를 우려하며 대법관 수를 늘리겠다는 말을 수시로 꺼내들었다. 하지만 실제 칼을 꺼내든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과 민주당은 칼날만 조금씩 보이는 선에서 멈추고 있다.

이처럼 미국에서도 대법관과 검찰총장(미국 법무장관은 검찰총장을 겸한다)은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다. 대선 불복에 골몰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 해임한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게 대선 국면에서도 내내 문제삼았던 바이든 차남 헌터 관련 특별검사를 진행하라고 했지만 사실상 거부당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법부와 검찰권력이 연일 정치바람에 시달리는 한국을 돌아보게 된다. 한쪽에선 검찰총장과 법관 탄핵을 들먹이고 맘에 맞는 판결과 기소에만 환호하는 다른쪽도 검사와 법관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내친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는 반대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긴즈버그는 5년전 방한했을때 강연을 통해 “정당한 정의 실현은 사법적 독립성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고 입을 막거나 반대를 외치는 손을 낚아채는데만 관심이 있는 한국에서 말이다. 2015년 긴즈버그의 판결문 일부인 ‘헌법의 입법부란 단어가 국민에 의한 입법을 배제하는 쪽으로 해석되선 안 된다’는 말은 여전히 쟁쟁하다. 긴즈버그 후임 지명을 미루거나 지명식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가끔씩 치솟는 궁금증이다.

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칼럼목록

종료된칼럼

오늘의 꿀팁

  • 날씨
  • 건강쏙쏙

많이 본 뉴스

부동산 유튜브 정보채널 부릿지
부꾸미

포토 / 영상

머니투데이 SER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