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잔데, 치마가 너무 입고 싶어요"…고민하던 이를 위하여

치마 저도 입어봤는데요. 정말 편합니다. 치마는 편한데, 입고 다니는 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고민에 공감합니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치마가 너무 입고 싶어요..."

우연히 한 남성이 올린 고민 글을 봤습니다. 치마가 너무 좋은데, 끊을지 말지 고민이라 했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고 치마가 그냥 편해서 그런 거라고요.


치마를 입는 건 그의 은밀한 취미였답니다. 9살에 부모님 몰래 입어봤고, 중1 때부터는 엄마 치마를 몰래 입었다지요. 대학교 땐 치마를 사봤고, 자취하며 집에서 입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부모님께 걸려서 치마를 다 버렸답니다. 그런데 지금도 입고 싶어 고민이라는 거였습니다.

치마를 입고 명동을 활보해 본 남성으로서 당신의 고민에 깊이 공감해서, 이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저도 치마 입어봤는데, 정말 편하더라고요

치마는 편했는데, 치마를 입고 다니는 건 편하지 않았습니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치마 끊을지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면서, 성정체성까지 밝히는 당신의 글을 보며(그 둘은 당연히 별개입니다) 제 경험담을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지난해 여름 치마를 처음 입어봤습니다. 38년간 바지만 입고 살았는데, 아내가 "치마는 편한데"라고 한 게 계기였지요. 안방에 가서 문을 닫고 아내 치마를 입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옷도 있었구나, '신세계'가 열렸달까요. 제 육덕진 하체는 늘 좁은 바지에 갇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내친 김에 치마를 샀습니다. 긴 치마로 시작해서, 무릎까지 오는 더 짧은 치마까지 입어봤습니다. 명동 한복판도 거닐어보고, 회사에 출근도 해봤지요. 소변기 앞에 섰을 땐 고민도 들었지요. 치마를 내려야 할지 올려야 할지.

치마를 처음 입어보던 날 기념 셀카./사진=남형도 기자

정말 편했습니다. 한여름 무더위에, 하체를 통해 솔솔 들어오던 에어컨 바람의 시원함을 잊지 못합니다. 또 입고 다니고 싶었지만, 치마 두 벌은 1년 넘게 제 옷장 속에 고이 간직돼 있습니다. 하루종일 시선으로 두들겨 맞은터라 더는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러니 치마가 편해서 좋다는 입고 싶다는, 선생님의 고민이 틀리거나 잘못된 게 아닙니다. 치마를 두고 '끊는다'는 표현을 쓴 것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왜 그럴까요.

영국에선 남녀 구분없이, 치마·바지를 선택

남성 연예인들은 그래도 치마를 입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지속적으로 당당히 입진 못했지요./사진=오센

'남자는 이걸 입고, 여자는 이걸 입어야한다'는 성(性) 고정관념 때문이겠지요. 그걸 한 사람이 깨긴 매우 어렵고요. 그러니 얼마나 괴로우셨을지 이해합니다.

다행히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에서도 '젠더 뉴트럴(남녀 구분 자체를 없애고 중립적으로 보아 사람 자체로만 생각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회가 진화하는 것이지요.

'라이프 트렌드 : 젠더 뉴트럴'이란 책(저자 김용섭)에선 이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영국 학교에선 교복을 입을 때, 치마나 바지 중 어떤 거든 남녀 구분 없이 동등하게 선택하게 한답니다. 젠더리스 교복입니다. 어릴 적부터 성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않겠단 것이지요.

영국에선 남학생들이 반바지를 금지하는 학교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치마를 입고 등교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3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치마 교복에 응원해주는 선생님도, 박수쳐주는 친구들도 있었답니다./사진=더선

영국 국교회 교육국은 산하 4700개 학교에 지도안을 배포했는데, 거기에 '남자 아이에게 치마 입을 자유를 허용하라'는 내용을 넣었답니다. 창조적인 탐험을 하는 시기에 아이들이 여러 정체성의 옷을 입어보고, 어떤 사람이 될 지 탐구해야 한단 지침이지요. 평가나 조롱 없이요.

일본에서도 이런 흐름이 있답니다. 가시와노하 중학교란 곳에선 남녀 구분 없이 바지나 스커트 교복을 골라 입을 수 있답니다. 바지는 통 넓은 슬랙스, 상의는 가슴·허리 라인이 부각되지 않는다고요.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인 남자 치마, 무슬림들이 입는 흰색 롱 원피스, 그리스 전통 의상인 남녀 공용 원피스 사례를 들며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류는 처음엔 다 치마를 입었으나, 전쟁을 치르며 바지가 발달했다. 남자는 치마의 선택권을 잃어버렸다."

이 사진에서 남성과 여성은 누굴까요? 정답은 '누구나 될 수 있다'입니다./사진=남형도 기자

언젠가 치마를 입고 다니다, 선생님과 우연히 마주친 뒤 씩 웃는 날이 오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날이 단 하루라도 더 앞당겨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