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에" "나이 때문에"... 성폭행 당하고도 말 못하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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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2일 90대 여성 A씨가 80대 남성 B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A씨 손녀가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신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A씨의 속옷에서 B씨의 DNA가 검출됐다. 그러나 경찰은 이 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했으며, 검찰에서도 사건 검토 후 재수사 요청 없이 사건 기록을 반환했다. A씨가 고령에 치매를 앓고 있어 진술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서도 신고를 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자신이 잘못해서 당했다'는 수치심에 신고를 꺼리거나 신체·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된 수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형사전문가들은 피해 진술이 어려운 고령층의 특성을 감안해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노인 성범죄 느는데 신고는 없다…"당하고도 '자기 때문'이라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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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고령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2016년 599건에서 2020년 873건으로 약 45.7%가 늘었다. 5년간 발생한 총 범죄 건수는 3750건으로 산술적으로 매일 1명 이상의 노인이 성범죄 피해를 입은 셈이다.


범행 장소도 주거지·노래방에서부터 길거리까지 다양하다. 경찰이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3년간 60세이상 노인대상 성범죄 기소송치사건 사례'에 따르면 △주거지 △노래방 △차 안 △길거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어느 곳도 '노인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가해자들은 주로 신고가 어려운 치매 환자나 어려운 환경에 놓인 피해자를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월 서울 금천구에서는 한 다세대 주택에 침입해 치매를 앓는 80대 여성을 성폭행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2018년에는 서울 종로구의 쪽방촌에서 자고 있던 90세 여성을 성폭행한 47세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다. 독거노인이었던 이 사건 피해자는 범행 당시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알려지지 않은 노인 대상 성범죄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수사기관을 꺼려하는 고령층의 특성상 범죄 피해를 입고도 신고를 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 신고하더라도 CCTV(폐쇄회로TV)나 이웃이 없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인 피해자들의 범행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의 변호사는 "젊은 세대의 경우 상대적으로 피해 신고에 적극적이지만 노인들의 경우 (피해 신고에 소극적인) 과거의 감성으로 살아와 수치심의 장벽이 훨씬 높다"며 "신고하지 못한 과거의 피해를 털어놓고 눈물을 흘리다 가는 분들이 왕왕 있다"고 했다.
용기 내도 고령·편견에 진술조차 어렵다…"수사기관이 적극 대응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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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는 고령·질환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피해 사실을 진술하기 어려운데다 수사 과정에서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진술이 어렵다 보니 20·30대 피해자에 비해 부실수사가 일어나기 쉽고 수사기관이 편견을 가지기 쉽다는 목소리다. 피해 사실을 인지할 경우 유관 기관이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성범죄 피해는 연령과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노인의 성범죄 피해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 편견을 갖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도 "수사 인권 차원에서 진술이 어려우신 분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노인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 신뢰관계인의 동석이나 진술조력인의 조력을 적극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