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 모르면 무식?…노는 물이 다른 1020과 '소통'을

/사진=뉴스1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두고 세대 간 문해력 격차 논란이 불거졌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 정보만 접하게 되는 '필터버블' 현상이 언어문화의 차이를 만들어 낸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해력 격차 논란은 서울 마포구 홍대의 한 커피숍에서 웹툰 작가 사인회의 예약 오류를 사과하며 시작됐다. 지난 20일 사인회 주최 측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사인회 예약이 모두 완료됐다"며 "예약 과정 중 불편 끼쳐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일부 고객들은 매우 깊고 간절하게 마음을 표현한다는 '심심(甚深)'이란 뜻을 지루하다는 의미의 동음이의어로 오해했다. 그러면서 "심심한 사과가 뭐야? 심심해서 사과한다는 뜻임?" "안 심심한데…"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심심한사과?" 진짜 XXX들 같아"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심심(甚深)하다'는 뜻을 모르냐며 1020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20년에는 8월 1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광복절부터 사흘간의 연휴가 주어졌다. 이를 두고 SNS에서는 사흘이 3일을 의미하는지 몰랐다는 반응이 쏟아지면서 한때 사흘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 대학생이 리포트 제출 기한이 '금일'인데 '금요일'로 잘 못 이해해 교수에게 항의한 내용의 글이 온라인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논란의 원인으로 개인 성향에 맞춘 정보만 제공해 비슷한 성향의 이용자들이 비슷한 종류의 콘텐츠만을 소비하게 되는 필터버블(Filter Bubble)을 꼽았다. 10~20대의 경우 단어를 줄여쓰는 경우가 많은데 단어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줄인말 등으로 해당 단어의 의미를 먼저 받아들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미디어 환경이 다원화, 다양화되다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를 중심으로 미디어 소비가 이뤄지면서 전체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갈수록 줄어든다"며 "특정 정보에 과다 노출되거나 과소 노출되면서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외의 공간에서 사용되는 언어나 상징들이 잘 전달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 6월 발표한 '세대별 SNS 이용 현황' 보고서./사진=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보고서 캡처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 6월 발표한 '세대별 SNS 이용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세대별로 선호하는 SNS 플랫폼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비붐세대(55~65세)는 카카오스토리(38.3%)와 네이버밴드(33.7%)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X세대(만 39~54세)는 페이스북(27.0%), 카카오스토리(23.3%), 인스타그램(23.3%), 네이버 밴드(18.4%) 등 다양한 플랫폼을 선호했다. 밀레니얼 세대(M 세대, 만 25~38세)와 Z세대(만 9~24세)는 인스타그램을 선호했다.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알고리즘 추천에 따라 최적화된 콘텐츠만 소비하다 보니 언어문화도 다르게 형성된다. 알고리즘에 따라 최적화된 성향의 각종 밈(meme)과 움짤(움직이는 그림파일)을 소비하게 되면서 같은 세대 안에서도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경향도 나타난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라는 의미의 '알잘딱깔센'이나 사(4)귀기 전 이른바 호감을 느끼는 단계를 뜻하는 '삼귀다' 등의 어휘가 한 예다. 특정 인터넷 1인 미디어 또는 게임에서 상황을 묘사하는 단어들도 있다.

이 때문에 심심한 사과 논란을 두고 전문가들은 소비하는 콘텐츠 종류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언어는 사회문화적으로 세대별로 자주 사용하는 언어와 그렇지 않은 언어가 있다"며 "심심한 사과도 특정 세대가 모두 그 뜻을 모르는 건 아니다. 모르는 말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소셜미디어의 특징이 현재의 문제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디어가 세대 간 문해력 차이에 따른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모르는 단어가 있다면 정보화시켜 알려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