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장, 점거 좀 하면 어때"?...90%가 '손해배상' 판결

경기도 버스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에서 가진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가 최근 14년 간 기업·국가·제3자가 노동조합·간부·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 사건'을 분석한 결과 손해배상 청구 원인의 절반은 사업장 점거에 의한 생산라인 중단 등으로 나타났다. 사업장 점거 시 손배소송 인용률은 90.3%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20일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기업·국가·제3자가 노동조합·간부·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 사건'에 대한 2차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 4일 발표한 전체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 현황' 1차 결과에 이은 것으로 판결이 선고된 63건을 대상으로 선고 결과와 행위별 법원의 판단을 분석한 내용이 추가됐다. 실태조사와 함께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관련 해외사례 조사 결과도 함께 공개했다.

고용부가 손해배상 판결을 분석한 주요 내용을 보면 법원은 불법(쟁의)행위이더라도 손해 발생 또는 손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또 일반 조합원의 경우 단순히 노무를 정지한 것만으로는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손배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사안에 따라 사용자의 귀책사유와 불법(쟁의) 행위의 동기 등을 참작해 책임을 경감했다.


손해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은 사업장 점거로 나타났다. 손해배상 청구 원인의 49.2%(31건)이 사업장 점거에 의한 생산라인 중단 등이었다. 인용률은 90.3%로 전체 손배 청구 인용액의 98.6%를 차지했다. 사업장 점거의 93.5%는 위력으로 점거됐고, 위력 점거 과정에서 폭행·상해가 수반된 경우는 71%로 나타났다.

법원은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청구액이 다액이라는 이유를 권리남용으로 보지 않았다. 쟁의행위는 헌법과 법률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하에 사용자에게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권리가 있고, 손해배상 청구액이 다액이라는 사정만으로 회사가 근로자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가하려는 목적으로 소를 제기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앞서 고용부가 지난 4일 발표한 손해배상 소송·가압류 실태조사 결과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제기된 손배 소송은 총 151건으로 청구액은 2752억7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49건, 350억1000만원이 인용됐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은 24건, 청구액은 916억5000만원이다. 나머지 127건은 종결됐다. 종결 사유는 △판결 확정 61건 △소 취하 51건 △조정·화해 15건 등이다.

손해배상소송의 분포/사진=고용노동부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대부분 국가에서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선 민사상 책임을 면책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면책을 법률적을 명시한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고 고용부는 설명했다.

손해배상 청구 대상의 경우 일본과 영국 등 일부 국가는 쟁의행위 목적과 절차가 위법하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방식이었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폭력·파괴행위 외에 사업장 점거 등도 위법하다고 판단해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했다.

또 개인에 대해서만 법률을 통해 손해배상 책임을 면책한 사례는 찾지 못했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불법행위 책임이 있는 경우 노조뿐 아니라 개인의 책임이 인정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실제로 일반 조합원에 대한 청구 사례는 적은 것으로 파악된다.

배상 범위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입법례도 찾기 어려웠다. 영국은 상한액을 정하고 있지만 개인에는 적용되지 않고, 노조에 적용되지만 개인상해나 재산의 소유·점유 등에는 적용을 제외했다. 일본·미국 등은 쟁의행위 발생 경위 등을 개별·구체적으로 고려해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등 판결을 통해 법률상 한계를 상당 부분 해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