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선비에 그 왈가닥 아씨' 이제 안 먹히는 청춘사극

사진제공=tvN, SBS, MBC

한때 ‘청춘사극’이라 불리는 장르가 안방을 휩쓸던 때가 있었다. 우리가 보통 대한민국 사극을 구분할 때 쓰는 ‘정통사극’과 ‘퓨전사극’ 중 퓨전사극의 하위장르다. 어느새 부터 사라진 조선 청년들의 수염, 간지럽고 부드러운 멘트들을 던지기 시작한 ‘꽃도령’ ‘꽃선비’ 등의 등장과 함께 청춘사극은 태동했다. 그리고 하나의 굳건한 장르가 됐다.


그러나 TV 드라마 특히 지상파나 케이블 작품의 공통적인 위기 때문일까. 굳이 따지면 시청률이 안 떨어지고, 화제성이 안 떨어진 작품이 드물지만 청춘사극은 그중에 유독 된서리를 맞고 있다. 최근 청춘사극의 형식을 띠고 출발하는 작품들의 화제성이나 시청률이 예전 같지 못하다. 과연 그 완성도를 문제 삼아야 할까. 그 외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일단 현황을 들여다보자. 지금 TV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작품 중 ‘청춘사극’이라 불릴 수 있는 작품은 둘이다. 지난 3월20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꽃선비 열애사’ 그리고 같은 달 31일부터 방송 중인 MBC 금토드라마 ‘조선변호사’다. 지난 11일 막을 내린 tvN 월화드라마 ‘청춘월담’까지를 포함하면 작품은 셋으로 늘어난다.


막을 내린 ‘청춘월담’의 시청률은 마지막회인 20회가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코리아(이하 동일업체) 유료가구기준으로 4.9%를 기록해 가장 높았다. 나머지는 3%대에 머물렀다. 마지막회라는 프리미엄을 업고 1% 포인트 이상 점프한 것인데, 제작사나 스태프 그리고 배우 입장에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수치였을 것이다.

'청춘월담', 사진제공=tvN

‘꽃선비 열애사’는 지난 11일 8회 방송까지 최고수치가 1회의 4.4%였다.(전국 가구기준)이후로는 완만한 내림세다. ‘조선변호사’는 조금 더 안타깝다. 같은 기준으로 지난 8일 방송된 4회가 2.7%였는데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4회까지 3%를 넘긴 회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반적인 드라마들의 흥행이 저조한 것도 아니다.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 2’의 시청률은 18%가 넘었다. ‘조선변호사’는 ‘모범택시 2’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후 이 시간에는 SBS의 대표 프랜차이즈 ‘낭만닥터 시리즈’의 세 번째 시즌이 들어오기 때문에 ‘조선변호사’의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청춘들이 주인공인 사극에 복합장르를 끼웠다는 점이다. ‘청춘월담’은 기이한 소문에 시달린 왕세자가 역시 흉흉한 소문이 도는 천재소녀를 만나 서로를 구원하는 내용이다. 청춘사극에 기이한 소문의 원류를 쫓는 미스터리 구조를 더했다. ‘꽃선비 열애사’ 역시 비슷하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숙집 객주 이화원 주인 윤단오와 미스터리한 인물 꽃선비 3명이 등장한다. 겉으로는 발랄해 보이지만 꽃선비들의 비밀은 왕가의 적통을 잇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궁중의 암투가 하숙집으로 뻗쳐 나와 이들이 휘말리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변호사’는 아예 서스펜스, 추리극의 구조를 전면에 내세웠다. 조선시대 변호사 외지부를 소재로 부모님을 죽게 한 원수에게 사적인 복수보다는 재판을 통한 공적인 복수를 추구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현대극으로는 많이 공개된 적이 있어 다소 이채로운 사극의 형식을 들였다.

'꽃선비 열애사', 사진제공=SBS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 같은 접근이 오히려 기시감을 만들고, 피로감을 만든다는 점이다. 세 드라마는 닮은 듯 비밀이 많고 상처가 있는 남자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심지어는 ‘꽃세자’ ‘꽃도령’ ‘꽃선비’로 외모에서 여겨지는 이미지도 비슷하다. 여기에 천방지축의 여주인공이 끼어든다. ‘청춘월담’ 민재이 역 전소니, ‘꽃선비 열애사’ 윤단오 역 신예은, ‘조선변호사’ 이연주 역 김지연 등은 신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호기심이 왕성하고 행동력이 출중하고 시련을 통해 성장한다는 점에서 한 인물의 여러 단면을 보는 것처럼 놀랍도록 유사하다.


심지어 남자주인공들과 여자주인공들은 처음에는 서로 오해하고 반목해 심지어는 소름 끼치게 서로를 싫어하지만 오해가 걷히고 각종 에피소드를 통해 가까워져 둘도 없는 정인이 된다는 점까지 유사하다. 비록 두 작품은 전개가 다 나오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행보는 손바닥 보듯 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할 거라는 예상이다.


이 뻔한 예상이 말 그대로 청춘사극의 퇴보를 이끌고 있다. ‘성균관스캔들’ ‘해를 품은 달’ ‘구르미 그린 달빛’ ‘백일의 낭군님’ 등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이미 학습된 방식, 세세한 표현이나 장르적인 차이는 있으니 십수 년이 지나도록 형식이나 구성면에서 진일보한 작품이 나오지 않는 환경이 결국 대중의 외면을 부채질하고 있다. 심지어 지금의 대중은 TV에서 조금만 눈을 떼면 파격적인 장르와 구성, 대자본의 위력이 느껴지는 장르물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들의 우물 안에서 발전이 느껴지지 않는 형식은 고여있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청춘사극은 한때 한류열풍의 근원으로도 여겨지면서 대한민국 드라마의 대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당장 그 장르의 영속마저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어려운 지경이 이르렀다. 과연 이 상황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단순히 구성이나 전개의 문제일까? 아니면 이런 작품을 알아주지 않는 대중을 탓해야 할까. 사극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즐겨 만드는 모든 사람들의 진짜 고민이 필요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