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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에세이]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CEO에세이 머니투데이 진양곤 하이쎌 회장 |입력 : 2012.11.22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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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에세이]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2012년 가을의 끝자락. 마지막 단풍이 처연하게 붉다.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자체 조달하던 나뭇잎이 일조량 부족한 가을이 되자 나무의 영양분으로 버텨보려 하나, 겨울나기 준비로 제 몸 살피기에 급급한 나무가 영양분을 차단하면서 엽록소가 분해되어 나타나는 반응, 그게 단풍이다. 겉으로는 형형색색 아름답고 운치 있지만, 본질은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나뭇잎의 몸부림이 단풍이며 낙엽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차용하면, 복잡해 보이는 세상의 많은 현상들의 본질은 지극히 단순하다. 단풍처럼 말이다.

얼마 전 TV 토론에서 복지에 대해 논쟁하던 한 패널이 무상급식을 거론하는 걸 보았다. 복지 망국론의 대표주자로 거론되는 무상급식. 나는 여전히 확고한 찬성론자이다. 현상들은 복잡하지만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 나름의 구분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2교시가 끝난 후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커다란 고무 대야와 주걱을 들고 오셔서 모두들 도시락을 가지고 나오란다. 그러더니 도시락을 대야에 붓고 마구 저어서 다시 배식해 주는 것이었다.
그렇다. 쌀이 부족했던 그 시대에 국민 모두가 쌀과 보리를 반반 섞어 먹게 하던 ‘혼분식 장려운동’ 점검 차 장학사가 출두한 것이었다’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밥 퍼’ 주신 선생님 덕에 상류층 자제 반, 서민 자제 반으로 구성된 나름 지방의 명문 초등학교는 국가정책을 준수하는 학교가 되었다.
하지만 내 가슴엔 상처를 남겼다. 내 어머니가 곱게 싸주신 쌀반 보리반 도시락을 내 동의도 없이 왜 마음대로 섞어 버리는가. 하얀 쌀밥 도시락으로 내 도시락에 상처를 입힌 친구들은 왜 보리밥 도시락을 먹지 않는가. 부모의 사회적 힘과 경제력을 기준으로 친구들간 우정이 나뉠 수 있음을 확인한 그날의 아픔을 ‘불행히도’ 난 기억하는 것이다.

부잣집 자식들까지 공짜 밥 먹이면서 예산을 축내지 말자는 의견도 시각이 다를 뿐 애국심과 정의감의 발로일 것이다. 하지만, 돈 내고 밥을 먹는 아이와 공짜로 먹는 아이가 구분되어 상처받지 않기를, 어린 시절부터 부에 대해 반감 갖는 일이 없기를, 규정은 똑 같이 적용될 것이며 따라서 기회는 균등하다고 느끼게 되기를, 서로 다르지 않기에 배려하고 아껴야 하는 친구들임을 확인하기를, 그리하여 부에 대한 열망과 존경, 그리고 균등한 기회에 대한 건전한 확신을 가진 우리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된 후에도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통해 번영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이유이며 본질이다. 즉, ‘체제 존속적이며 보수적인 의도’가 아이들의 먹는 것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나는 믿으며 이는 복지 망국론과 예산의 잣대를 뛰어넘는 가치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쉼 없이 달려온 성장의 업보로,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이유로 사회적 갈등이 깊어져 간다. 대형마트를 규제하자니 납품하는 농어민이 울고, 회사를 살리려 구조조정을 하자니 떠나야 하는 직원이 울고, 택시를 살리자니 버스가 울고, 반값 등록금을 추진하자니 예산이 울고, 재벌 규제를 하자니 투자와 일자리가 줄까 걱정이고. 기업가도 늘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들과 싸우지만, 요즘 사회적 이슈들을 보면 정책 입안자들은 머리 꽤나 아플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나.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 C(Choice)의 연속이니 선택하고 결정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수밖에.

선택의 순간에 우리가 해야 하는 첫 질문은 “무엇이 정의롭고 선한 것인가” 하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의도가 선해야 하며 이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와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선한 의도가 사악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송양지인(宋襄之仁)의 고사가 그렇고, 대표적 사회공헌 기업인 탐스슈즈가 오히려 제 3세계 신발 산업을 고사시킨다는 우려가 그러하며 낙수효과를 노린 선한 정책의도가 소수의 기업에 부가 집중된 결과를 가져온 것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질문 앞에 서야 한다. 느린 엘리베이터에 대한 불만을 속도로 해결한 게 아니라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과 모니터로 해결
한 사례처럼, 본질은 종종 다른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얼마 후면 서울의 교육을 이끌 교육감과 대한민국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될 것이며 갈등과 대립으로 배배 꼬인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게 누구이든, 올바른 철학과 가치, 결과로서의 기능이 함께 어우러지는 리더십으로 잘 헤쳐 나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새 정부의 선택과 결정으로 인해 상처 난 곳이 있다면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길 바란다. 가끔 본질은, “왜 그 일을 추진하느냐”가 아니라 “왜 더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거나 상처를 보듬는
노력을 하지 않았느냐”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앞의 내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지난 날의 선생님에게 묻는다. 학교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해도 이로 인해 상처받은 학생에게 이해를 구하고 우정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없었던 것인지.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이러한 소박한 질문들 속에 머물고 있음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리더가 기억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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