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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함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CEO에세이]

CEO에세이 머니투데이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 |입력 : 2013.03.14 07:54|조회 : 7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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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함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B.C. 427년. "남자는 모두 사살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모두 노예로 삼으라"는 잔혹한 명령을 부여받은 배 한 척이 아테네를 떠났다. 아테네에 반기를 든 미텔레네섬은 조만간 피비린내 나는 대량 살육의 현장이 될 것이다. 배가 떠난 후, 대량살육 방식의 보복과 응징이 적절한 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두 사람이 나셨다.

클레온은 "사람들은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을 경멸하고 한 치 양보 없이 엄격한 사람에게는 존경을 표합니다. 가엾게 여기고, 명민해 보이는 주장을 선호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주장에 귀 기울이는 것, 이는 제국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3가지입니다"라며 적들에게 자비를 보여주는 것은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처절한 보복과 응징은 적절하다고 역설했다.

클레온의 연설에 모두가 공감하는 가운데 디오도투스가 일어섰다. 그는 적국 중에서도 아테네에 저항하고자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살육함으로써 본보기를 보이려면 더 철저하게 준비해 저항해야 한다고 했다. 또 어차피 살육 당할 거 죽기 살기로 항전하게 될 테니 살육을 통한 보복과 응징은 미래의 반란을 억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성급함은 지혜로운 대안을 막습니다. 현명한 충고를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 요인은 성급함과 분노입니다. 성급함은 어리석음을 이끌고, 분노는 유치하고 편협한 마음을 끌어냅니다"라고 말했다. 격한 논쟁에 이은 투표결과 간발의 차이로 디오도투스의 정책이 채택되었고 대량살육의 임무를 부여 받은 배를 저지하기 위해 두 번째 배가 급히 출항한다. 이상은 자카리 쇼어의 신작 'BLUNDER'(블런더)에 나오는 내용이다.

자카리 쇼어는 이 역사적 실화를 인용하면서, 클레온의 주장은 적국인 스파르타보다 자신의 조국 아테네가 약체로 비치게 될 까, 조국의 안전과 위상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까를 두려워한 노출불안의 결과였다며, 이러한 노출불안은 신중한 토론, 민주적 수단,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상상력’에 의해 억제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한 범주에 속한 다양한 대상들 간의 다양한 차이를 식별해 내는 디오도투스의 상상력으로 인해 대량살육이 저지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팍스 아테네니엔시스(pax Atheniensis). 즉 ‘아테네 제국의 무력에 의한 평화’라는 정책 분위기가 지배하였으며, 이보다 10여년전인 B.C. 440년에는 아테네로부터 독립하려 했던 사모스섬이 살육의 현장이 되었고, 이보다 10년후인 B.C. 416년에는 델로스동맹에 합류하라는 아테네의 요청을 거부한 멜로스섬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감안할 때 디오도투스라는 한사람의 상상력이 가져 온 결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핵 선제타격을 통해 불바다로 만들겠다", "제 2 조선전쟁을 피하기 힘들다"는 북한의 성명에 대해 "핵 공격시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것"이라고 국방부가 대응했다. 최근의 북한의 도발적 성명과 이에 대한 국방부의 강경 대응을 지켜보면서 2500년 전 미텔레네섬과 아테네의 토론 현장을 떠올리는 건 과잉일까.

우리는 발생 한 사실로부터 원인을 찾고 경험과 교훈이라는 자산을 얻게 된다. 하지만 전쟁은 다르다. 원인과 교훈을 논하기에는 너무도 큰 고통과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특히 가공할 무기를 통한 현대전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전쟁은 전쟁을 각오함으로써 막을 수 있다는 말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도 증명하는 바다. 하지만 북한의 이성을 상실한 집권층과 군부가 전쟁운운하며 위협한다고 하여 북한 정권을 지구상에서 소멸시킬 것이라는 대응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어떠한 세력의 어떠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역사적 가치는 지켜낼 것이며 그러한 준비는 충분하다"는 말로는 국민을 안심시키기 어려웠던 것일까. 나약함의 표시가 되는 것일까?

자카리 쇼어는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패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적국 지도자인 호치민이 자본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혹은 아군인가 적군인가라는 이분법적 분류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호치민은 공인된 공산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민족주의자로 다소 복합적인 인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이해부족이 패전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상상력이 결핍된 평면적인 관점은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감정이입 능력을 박탈하여 편협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흑백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도록 몰아간다"고 말한다.

또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언급하면서, 집단사고가 가져올 뻔한 세계 핵전쟁 발발의 위기 속에서 케네디는 소련 수뇌부의 마음에 감정을 이입하여 그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특히 후르시초프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집중했기에 현명한 판단이 내려졌고 그 결과로서 세계 핵전쟁은 발생치 않았다고 말한다.

중국역사상 황금시대를 연 당태종 이세민은 "고대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상을 파고드는 불안함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은 더더욱 그러하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위대한 미국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야당과 국방부의 압력, 그리고 두려워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에 대해 케네디는 말한다. "정중함은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며,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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