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일가 차명주식 관행에 칼 빼든 국세청

머니투데이

세종=조성훈 기자

양병수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이 18일 정부세종2청사 국세청 기자실에서 '차명주식 통합분석시스템으로 주식 명의신탁 정상화 적극 추진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세청은 브리핑에서 최근 5년간 주식변동조사 결과 명의신탁으로 세금을 탈루한 1702명에게 증여세 등 1조 1231억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2016.10.18/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모 중견그룹 A 회장은 수십년간 타법인을 인수하거나 유상증자하는 과정에서 친인척과 임직원, 거래처 대표 등 54명의 명의를 빌려 그룹내 15개 법인 주식을 샀다. A 회장은 이런 차명주식을 정상적으로 양도한 것으로 가장해 일부 주식은 소유권을 가져 왔다. 또 나머지 주식은 자녀가 취득한 것처럼 우회증여해 경영권을 편법승계했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에 걸려 증여세 등 1300억원을 추징당했다.

#기업사냥꾼 C씨는 코스닥상장사 K를 무자본으로 사기 위해 사채자금으로 친인척과 지인 등 24명의 명의로 주식을 매입했다. 이후 C씨는 유상증자를 실시해 증자대금으로 사채를 갚고 시세조종꾼을 동원해 주가를 끌어올려 주식을 팔았고 양도차액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 그러다 당국에 적발돼 190억원을 내야 했다.

주식 명의신탁으로 탈루했다가 문제가 된 사례들이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주식 명의신탁은 대부분 은밀히 이루어져 적발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차명주식통합분석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이런 과세회피 목적의 명의신탁을 찾아 내 뿌리를 뽑기 위한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차명주식통합분석시스템은 기존의 주식변동사항과 과세자료, 금융거래 내역 등 외부자료를 연계 분석한다. 예컨대 특정법인의 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소속 임직원들이 보유한 주식지분을 처분하지 않는 경우, 특정인이 거액의 주식을 팔거나 배당소득이 생겼는데도 실제 재산이 늘지 않았을 경우 등을 찾아 내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기존에는 주식보유현황 등 개별건별로 분석해야 했지만 통합시스템을 활용하면 조사 단계에서부터 장기간에 걸친 주식소유 변경이나 각종 기업 인수합병 과정과 자금내역을 통합분석해 통해 임직원들의 차명주식 보유여부를 정밀하게 가려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이 시스템을 통해 혐의점이 도출되면 즉시 관할 지방청에 넘겨 세무조사 등의 근거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

국세청이 이렇게까지 한 것은 부동산, 금융계좌와 달리 주식 명의신탁이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1993년 시행된 금융실명제와 1995년 부동산 실명제로 모든 금융부동산거래는 당사자나 실권리자 본인 명의로 해야 한다. 반면 주식의 경우에만 명의신탁 행위가 사적 거래로 간주돼 법 위반이 아니다.

이는 과거 상법상 법인설립 시 발기인 요건과도 관련이 있다. 1996년 9월 30일 이전에는 발기인 7인 이상이 필요했다. 이후 3인 이상으로 줄었다가 2001년 7월 이후부터는 발기인 1인 이상으로 완화됐다.

따라서 2001년 이전 법인설립 시에는 대표가 가족이나 임직원, 지인의 이름을 빌려 주식을 맡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법이 개정된 2001년 이후에는 명의신탁 필요성이 없어졌지만 이후에도 상속증여세 회피목적의 차명주식 보유가 관행화됐다. 명의신탁관련 세금추징 적발자는 2006년~2010년 1700명이었는데 2011년~2015년에도 1702명이 적발됐다. 최근 5년간 명의신탁 관련 추징액은 1조 1231억원에 달한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오너가 2~3세로 경영권승계 과정에서 임원 등 제3자 명의를 이용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롯데그룹 총수일가의 3000억대 탈세사건 수사나 지난해 국세청의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등 총수일가에대한 2000억원대 추징금 부과 등이 대표적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자본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주식소유와 거래가 빈번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유산인 차명거래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면서 “사적 거래라는 이유로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만큼 정밀한 과세행정을 통해 편법적 관행을 차단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