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퍼런 금감원 칼 끝, '빅3' 자살보험금 무릎 꿇는다

금융감독원 전경/사진=머니투데이DB

보험업계를 뒤흔든 자살보험금 논란이 금융당국의 '완승'으로 끝날 전망이다. 법리를 강조하며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할 수 없다고 버티던 '빅3' 생명보험사들이 금융감독원의 서슬 퍼런 칼 끝에 속속 무릎을 꿇고 있다.

다만 정치권에서 금융당국에 대한 조직개편 논의가 이뤄지는 가운데 금감원이 존재감을 과시하려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 채 여론재판식으로 중징계를 내린데 대해서는 후폭풍이 상당할 전망이다. 금감원 제재시 법적 근거와 객관성, 투명성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 전액지급 결정…마지막 한화생명은?=1일 금융당국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2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소멸시효가 지나 지급하지 않은 자살보험금과 이자 전액을 돌려주는 내용의 안건을 의결한다. 삼성생명의 미지급 보험금 규모는 1008억원이다.

교보생명은 지난달 23일 금감원의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전건(1858건, 총 672억원)에 대해 지급을 결정했다. 교보생명은 '차차차 교통안전보험'과 관련해 약관을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2007년을 기점으로 이전에 판매한 보험에 대해선 지연이자 없이 원금만 지급하기로 했다.

이에따라 재해사망보장 특약 상품을 판매한 14개 생명보험사 중 한화생명을 제외한 13개사가 모두 소멸시효와 무관하게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게 됐다. 한화생명은 아직 공식적으로 입장을 선회하지 않았지만 삼성생명이 이사회를 통해 전액 지급을 결정할 경우 비슷한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아직 법리를 지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으며 이사회 일정 등도 정해진 것이 없다"며 "다만 가능한 모든 대응 방안을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상장사거나 외국인 지분이 많아 대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할 경우 배임으로 고소될 위험이 있는 삼성생명과 교보생명마저 '백기투항'을 결정한 것은 금감원의 중징계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교보생명은 오너이자 대표이사인 신창재 회장이 중징계를 받을 경우 경영구도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삼성생명도 미래전략실이 사라지며 삼성그룹이 사실상 해체된 상황에서 김창수 사장의 연임마저 불투명해지면 'CEO(최고경영자) 리스크'가 커진다. 여기에 전체 실적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보장성 보험을 3개월간 팔지 못해 엄청난 실적 타격을 받게 되고 설계사 조직 붕괴의 위험까지 떠안게 되는데다 3년간 신사업까지 가로막히자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빅3'는 전속설계사만 총 6만명이 넘는데 금감원이 내린 1~3개월의 영업정지 징계가 확정되면 이 기간 동안 설계사들은 생계에 지장을 받게 된다. 일부 영업정지는 금감원이 보험사에 가한 국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다.

◇"법리 뛰어넘은 결정" 미지급 분쟁 재발시 논란 소지=금감원의 초강력 제재로 자살보험금은 소멸시효가 지났어도 돌려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하다. 앞으로 또 다른 미지급 분쟁이 생겼을 때 이번 사건이 선례로 남기 때문이다. 소멸시효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을 금감원이 뒤집었기 때문에 소멸시효와 관련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에도 일부 암보험이 약관상 갑상선암의 보험금 지급기준이 모호해 문제가 됐다. 불분명한 약관으로 분쟁이 생길 때마다 소멸시효와 관련해 대법원 판결과 이번 금감원 결정이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제재의 법적 근거와 객관성, 투명성도 문제다. 금감원은 이번 중징계의 근거로 2011년부터 시행된 기초서류(약관) 준수 의무와 설명 의무를 들었다. 문제는 똑같은 법을 어긴 중소형 보험사에 비해 '빅3'에 대한 징계 수위가 너무 높다는 점이다. 게다가 '빅3'도 보험업법 개정 시점인 2011년 이후 자살보험금은 이미 전액 지급해 앞서 전액 지급을 결정한 중소형 보험사에 비해 과도한 징계를 받아야 할 근거가 법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이번 사건은 한국에서 규제산업인 금융업을 하려면 법원보다 금감원의 판단을 따라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며 "법리를 뛰어넘은 금감원의 결정이 선례로 남아 앞으로 미지급 분쟁이 재발하면 논란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