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통합검색

실시간 속보

경제신춘문예 (~12.08)KMA 2017 모바일 컨퍼런스 (~11.23)
세상과 잘 사는법, 내가 잘 사는법 - 네이버 법률

[오동희의 思見]이재용 구형과 정의에 대한 단상

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입력 : 2017.08.09 05:00|조회 : 6488
폰트크기
기사공유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죄와 횡령 등의 혐의를 적용해 징역 12년형을 구형하는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의 구형이 곧 혐의가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도, 형의 확정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구형의 각인효과는 크다.

특히 여론재판에서는 사실임이 입증되지 않고 검찰의 주장만 있더라도 이미 그만큼의 죄를 지었다고 예단하고 공표하는 효과가 있다.

여론의 관심이 많은 재판에서 법관은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저명한 변호사 캔들 코피의 저서 '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역 권오창)'에서 뉴욕 최고의 변호사 밥 모빌로는 "언론의 불빛이 법정 안으로 비추면 '사람들은 얼어버린다'"고 말한다.

판사나 검사가 유명인사들에게 감형을 얘기하면 비난의 봇물이 쏟아질 것을 우려하지만, 더없이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 오히려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해 경직된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여론의 지탄을 받는 피의자가 수백년의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실제 그만큼의 형을 살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 재판에 주목하는 사람들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정치적 행위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규철 특검보가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나 박영수 특검이 12년형을 구형할 때 원고 측은 모든 시민들이 이상적 가치로 여기는 '정의(正義)'라는 가치를 선점했다.

박 특검은 구형의견 발표에서 "이 사건 법정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피고인들의 양형에 대한 최종 의견을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특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정의가 살아있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죽었다는 암묵적 압박이다. 이 특검보도 지난 1월 구속영장 청구에 앞서 '경제보다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영장을 청구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실 정의(正義)라는 정의(定義)가 여러 종류다. 이는 기자의 말이 아니라,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니코마스코스 윤리학'(역 천병희) 제5권 정의 부분에서 다양한 정의를 설명했다.

정의에는 광의(넓은 의미)와 협의(좁은 의미)의 정의가 있는데, 협의의 정의에는 법적 정의와 정치적 정의 등이 있다. 이런 정의들은 그 상황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들이다.

정치적 정의는 필요의 충족을 위해 모인 공동체의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며, 법적 정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는 것이라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쉽게 말해 우리 사는 세상에서 다들 '정의'라고 떠들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각 상황에 맞는 자신들의 이익에 기반한 정의의 개념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법이나 입법자 탓이 아니라 '사태의 본성'(정치적 이해타산) 탓이라고 했다.

최근 특검만이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 휴대폰 문자나 음성파일 등 증거가 특정 매체를 통해서 공개되고 있는 것도 이런 '사태의 본성' 때문이다. 이는 엄연한 실정법 위반소지가 있지만, 공동체의 다수가 정치적 정의를 실현하다는 미명 아래 애써 눈감고 실행하는 여론전의 일환이다.

피의자에게 유리한 언론의 보도가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피의자 기업과 유착관계에 있는 언론의 선동전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우기 위한 '유출'의 의심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적 정의와 법적 정의 속에서 치러지고 있는 이번 재판에서 아이러니는 마지막에 나왔다. 박영수 특검의 구형의견문 속에 그 비밀이 있다.

그는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과의 독대라는 비밀의 커튼 뒤에서 이루어진 은폐된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중략) 대통령 기록물이나 공무상 비밀이라는 이유로 감추어진 사실도 머지않아 명확히 드러날 것입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박 특검의 이런 자기 고백은 그 자신도 아직 커튼 뒤의 진실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정치적 정의 관점에서 보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랬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유죄'를 내릴 수 있지만, 법적 정의나 광의의 정의는 '사실로 증명된 것'에 한해 유죄를 내린다.

죄가 있다면 누구든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드러날 것'이라는 박 특검의 말처럼 미래에 드러날 것이라고 예상되는 사실을 기반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예단하고 벌할 수는 없다.

진정한 정의는 '정치적 정의'와 구별돼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지나온 야만의 시대에 독재와 폭압이 저질렀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들과 달라야 하지 않겠나. 그게 진정한 정의이고, 민주주의다.
오동희 산업1부장 겸 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장 겸 부국장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종료된칼럼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