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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E. 장군의 두 얼굴

[송정렬의 Echo]

송정렬의 Echo 머니투데이 뉴욕=송정렬 특파원 |입력 : 2017.08.23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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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같은 뾰족한 흰색 두건과 흰색 가운. 1860년대 미국 남부 백인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백인우월주의 테러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의 상징이다. KKK를 비롯해 미국 사회의 인종주의자들이 가장 추앙하는 인물이 바로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E. 장군이다.

오늘날 리 장군은 인종주의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때문에 ‘샐러드보울’로 불리는 다문화사회인 미국에서 그의 동상의 철거대상 1호다.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에겐 ‘눈엣가시’다. 리 장군은 어떻게 인종주의의 얼굴이 됐을까.

역사속 리 장군의 모습은 사실 인종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단적인 예로 KKK는 1860년대 말 세를 불리기 위해 그를 간판으로 영입하려 했다. 리 장군은 단호히 거절했다. 리 장군은 남부연합군에 합류하기 전 남부 주들의 연방탈퇴와 노예제를 반대했던 인물이다. 다만 그는 ‘고향인 남부 버지니아냐 연방이냐’는 딜레마 속에 고향을 선택했다. 물론 이 선택은 훗날 그의 이미지가 인종주의로 덧칠되는 역사적 업보가 됐다.

리 장군은 남북전쟁 최고의 영웅으로 꼽힌다. 패장이지만, 미국인들이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오히려 전후에 그가 보여준 모습 때문이다. 그는 항복 이후 부하들의 게릴라전을 만류했다. 남부에서 자신의 기념비를 세우려는 움직임에도 반대했다. 전쟁을 넘어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묵묵히 교육자의 길을 걷다 생을 마쳤다.

하지만 남부재건의 꿈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죽은 리 장군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에겐 하나의 미국이 아니라 반쪽 남부를 결속시킬 수 있는 구심점이 절실했다. 우상화 작업을 통해 인종주의라는 가면이 리 장군의 얼굴에 씌워지기 시작했다. 1920년대 미국 전역에 리 장군의 동상들이 들어섰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도 이 무렵 리 장군의 동상이 세워졌다.

최근 샬러츠빌에서 리 장군의 동상철거를 반대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유혈시위가 벌어졌다. 불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로 튀었다. 인종주의자들을 두둔하는 양비론 발언을 내놓으면서다. 기업인들이 트럼프에 등을 돌리고, 심지어 공화당 의원들도 비판행렬에 가세했다. 결국 문제적 발언의 배후로 지목되던 극우성향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해임했지만, 비난의 파도가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열과 증오를 부추기는 발언으로 융단폭격을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후보시절인 2015년 말 캘리포니아에서 과격 무슬림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트럼프는 “무슬림의 입국을 전면적으로 완전 통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내부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맹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트럼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버트 E. 장군의 두 얼굴
트럼프의 ‘마이웨이’가 이번에도 이어질까.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의 지지층은 백인 중산층이다. 이들이 반이민정서와 민족주의 성향을 갖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트럼프 당선이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백인 중산층이 원하는 것은 이를 만족시켜줄 정책이지 폭력은 아니라는 점이다.

더구나 백인 중산층의 실망감도 쌓이고 있다. 트럼프 취임 이후 그다지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이민정책은 법원의 잇단 제동으로 숨만 붙어있다. 경경한 무역정책도 북한 핵 등 여러 변수로 말처럼 간단치 않다. 감세안 등 주요 입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지도가 역대 최저인 30% 바닥을 기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극우의 폭력까지 감싸고 돌다가는 정권 자체의 존립이 휘청할 수 있는 상황이다.

우상을 둘러싼 갈등은 단지 다인종사회인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어느 사회에나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다. 우상은 사회적 혼란과 갈등 속에서 만들어졌고, 또 만들어질 것이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포퓰리즘이 횡행할수록 우상은 더욱 기세를 떨칠 것이다. 전 세계적인 우상과 이성의 전쟁은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송정렬
송정렬 songjr@mt.co.kr

절차탁마 대기만성(切磋琢磨 大器晩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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