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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집]순간의 반짝임은 오래전 죽은 불빛

<150> 신혜정 시인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

시인의 집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입력 : 2018.06.30 07:29|조회 : 8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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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집]순간의 반짝임은 오래전 죽은 불빛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혜정(1978~ )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은 낮은 자세로 낯선 곳을 찾아가 나와 세상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한 고독한 여행자의 ‘히스토리’다. 시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도 모르게 반복하는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와 조우하고 조응한다. 그 세계는 국내외 여행과 우주물리학, 환경과 종교까지 광대하다.

그날 함께 본 일출을 기억하십니까 고성에서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면서 우리는 아무 음악도 틀지 않았지요 멀리 걸어오는 저 사람의 투명한 윤곽 걷는 자의 쓸쓸함 낭만은 오로지 풍경에만 있을 것 같은 유배의 시간 그곳에 다다랐지요 우리는 오로지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습니다 영원을 살아 보지 않은 자의 미숙함으로 몇 억 광년일지 모를 시간을 헤아렸습니다 유성우가 하늘을 가르며 떨어졌습니다 순간의 반짝임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불빛이라고, 당신이 말했습니다

죽은 불빛으로 반짝이는 그곳의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워서 나는 해안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에 마음을 빼앗겼지요 짭조롬한 바람을 머금은 갯완두가 하늘거렸지요

유배된 해안선에서 오래전의 그리움이 떠오릅니다 당신이 만약 그곳에 있다면 우리가 어떤 오늘을 만들었는지 오랫동안 침묵했던 자의 고독처럼 영원히 잊지 말기로 합시다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 바다를 듣기로 합시다
- ‘7번국도’ 전문

7번국도는 강원도 고성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다. 시인은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기행’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찾아간 7번국도 위에 서 있다. 이 국도변에는 울진·경주·울산·부산이 있고, 그곳에 원전이 있다. ‘일출’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인 동시에 인류 문명 또한 여명기를 지났음을 환기시킨다. 해가 하늘로 올라가는, 즉 지구의 역사는 점차 발전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반대로 “밑으로, 밑으로 내려”간다. 그 이유는 당연히 생명을 담보로 하는 비윤리적 원자력(핵) 기술 때문이다.

7번국도의 빼어난 풍경 속을 걷는 “사람의 투명한 윤곽”은 낭만적이지만 “유배의 시간 그곳에 다다랐”기에 결코 낭만적일 수 없다. 30년을 쓸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사라지지 않는, 30만 년을 유폐시켜야만 하는 원자력, 그 미래를 생각하면 끔찍하므로 “우리는 오로지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유성우가 하늘을 가르며 떨어”지듯, “영원을 살아 보지 않”은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실수, 지구의 미래 또한 유성우와 다르지 않다.

“순간의 반짝임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불빛”처럼 지금 ‘순간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죽음을 담보로 하고 있는 셈이다. 절망한 시인이 기댈 곳은 “오래전의 그리움”, 즉 인간의 천성과 “만약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당신(신)이다. “아무 음악도 틀지 않았”는데, 바다가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므로 시인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는 개인사를 통해 인류사를 다룬 시 ‘히스토리’의 “무너지는 모든 것들은/ 처음에는 환호로/ 막장에는 원점으로 돌아갔다”의 세계와도 일맥상통한다.

달빛이 아무리 환해도
나를 찾지 마세요

이 쪽지를 십만 년 후에 읽어 주세요

죽음과 진화의 사이에서
나를 찾아도 당신은

나를 찾은 것이 아니에요
- ‘숨바꼭질’ 전문

첫 시집 ‘라면의 정치학’ 이후 9년 만에 낸 이번 시집은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견지하고 있다. “나는, 낮아지고 낮아지고 낮아져서 낮게 흐르는 물”(‘낮은 자의 경전 - 기원’)처럼 되었지만 세상은 “거기, 그대로 있”(‘낮은 자의 경전 - 옵스큐라’)다. 나와 세상과의 간극은 삶과 죽음만큼이나 벌어져 있고, 그 사이에 사랑과 이별, 고독 등이 존재한다. 시인의 갈등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自然)의 일부분이면서 그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에 닿아 있다. 이에 대한 절망은 참담함을 넘어 죽음으로 표출된다.

여는 시 ‘숨바꼭질’은 “이생과 다음생의 희미한 간극”(‘시인의 말’)을 보여준다. 숨바꼭질의 속성은 숨는 자들과 찾는 자의 게임이지만, 영원히 숨을 수 없으므로 결국 찾는 자가 승리한다. 일몰 이후, “달빛이 아무리 환해도/ 나를 찾지” 말고, “이 쪽지를 십만 년 후에 읽어” 달라고 한다. “이 쪽지”에 적힌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십만 년 후에 읽”으라는 건 결국 읽지 말라는 것이다. “나를 찾아도” 나는 이미 죽었거나 진화해서 다른 존재가 되었으므로, 그것은 내가 아닌 새로운 존재인 것이다. “죽음과 진화” “사이” 중간에 소유격조사 ‘~의’는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만나고 싶지 않은 강렬한 의지가 담겨 있다.

표제시 ‘하우스 오브 카드’는 말 그대로 ‘카드를 쌓아 만든 집’으로, 엉성한 계획이나 위태로운 상황을 의미한다. 몸, 가전도구, 시 그리고 사랑마저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나와 내 주변의 것에 신경 쓰느라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허술한 나’를 통해 인류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당장 필요한 것, 근시안적인 것에 온통 신경을 쓰는 사이에 정작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신혜정 지음. 문학수첩 펴냄. 148쪽/ 8000원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6월 29일 (19:29)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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