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톡톡] 위대한 디퍼런스

그동안 머니투데이에 햇수로는 8년간 글을 썼다. 소소한 마케팅 인사이트부터 컬처노믹스 한국에 대한 꿈도 썼다. 좀 섣부르지만, 충남의 거대한 방조제 둑에 아시아 신화 단지를, '맘충'이나 헬리콥터 맘 같은 언어들이 참으로 흉악하여 대안으로 맘(Mom) 박물관을 만들자는 등의 아이디어도 냈었다.

쉽게 쓴 글, 멍청한 글, 심각하게 쓴 글도 있었다. 그 반응은 때로 기대와 달랐다. 쉽게 쓴 ‘너는 하숙생이냐 아들이냐?’ 같은 것은 엄청난 반응을 보인 반면, 나름 심각하게 쓴 ‘들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동학혁명 120주년을 맞아 씀) 같은 글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에 대해 지인들은 “대중들은 실패한 역사, 도움 안 되는 패배에는 관심 없어.” 라고 했다. 이젠 스낵 컬처 시대라고도 했다.


공감은 하면서도 동의할 수는 없었다. 빠르고 먹기 좋고 가벼운 스낵 컬처로만 쏠리는 것은 결국은 부작용이 남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은 빠른 나라는 되지만 위대해질 수는 없다. 빠른 것은 한계가 있고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위대한 사회는 시간을 두고 다양한 담론이 같은 자격으로 소용돌이쳐야 한다. 스피드와 비주얼 씽킹, 스낵 컬처가 시대를 반영하여 한쪽에 자리한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엉뚱한 덕후, 딴짓하는 아웃사이더들, 머리와 몸의 충돌, 쓸모없는 추구, 실패한 전사의 아우라가 저울의 한쪽 끝처럼 있어야 한다.

요즘 한국이 위기라며, 이번 위기는 다른 것이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한국에 위기가 없던 적이 있었던가. 유럽과 미국이 항상 순풍이었던가. 인구절벽을 앞에 둔 중국은 위기가 아니란 말인가. 사회조종자들은 늘 위기와 희망 프레임을 번갈아 쓰기 마련이다. 위기를 위기로만 보면 위기는 계속이다. 그러나 위기는 대체로 생체의 건강한 징후이다.


독감을 앓고 다리가 부러지면서 아이들은 큰다. 위기를 진화생물학적 원리로 받아넘기려면 기술은 문화가 잡아주고 물길은 직선이 아니라 사행(蛇行) 길을 만들어 생명을 품게 하고 인재들이 '멍때리기'를 하게 놓아줘야 한다.

역사는 우리의 다급한 욕심만큼 단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유럽이 패스트 시대에 오히려 슬로우와 소통을 말하는 것은 300년간 계몽과 광기, 혁명과 반혁명의 시간을 뼈저리게 겪었고 일본이 (분통 터지지만) 깊은 것은 욱일승천의 성공 뒤에 엄청난 집단 광기와 국가적 패배 시기를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가 더 멀리 가려면 좀 쉬기, 반대로 말하기, 턴도 해야 한다. 세상의 연료가 되겠다는 이상을 가진 이탈리아 디젤 청바지는 ‘어리석어라(Be Stupid)'라는 카운터 캠페인으로 스마트를 조정했고 세계인이 사랑하는 러버덕 플래시몹은 느린 유영의 통찰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길에는 익숙한 길과 새로운 길이 있다. 익숙한 길에 영광과 흥분은 없다. 새로운 길은 대중이 동의하지 않는 길로 간 사람들, 현실은 약자이나 강자 속에서 틈을 본 카운터 컬처의 본능을 가진 사람들이 열어왔다. 그 길을 가려면 100년의 시간 리듬을 갖고 남다른 기초 공부를 하여 결론으로 다른 도전을 하고 역풍의 시련도 어깨를 후려치는 죽비처럼 맞아야 한다.

커피숍에서 SNS 창을 열고 스낵 컬처를 홀짝이며 말뿐인 행동주의로 흙수저 타령을 해봐야 거기서 나오는 것은 줄 쳐진 운동장 트랙 길, 생각하지 못하는 나르키소스, 깡통 로봇 심장, 잠잔 토끼의 한탄일 확률이 높다.

하버드대 문영미 교수는 미래의 아이디어 브랜드가 공유할 3가지 특징으로 희귀한(카운터) 가치의 제안, 찌질한 차별화보다는 거대한 아이디어의 실천 그리고 인간이 모순덩어리임을 수용하는 인간적 숨결을 꼽았다. 멋진 통찰이고 위대한 디퍼런스다. 그런데 이게 어찌 일개 브랜드에만 통할 특징이겠는가. 개인, 기업, 사회, 문화, 100년 한국에도 통할 위대한 특징이겠지. 어쨌든 을미년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