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진의 증권반세기]증권업계 첫 '기업공개 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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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인으로서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는삼보증권이 앞장서 발행시장을 개척한 일이었다. 1977년 12월 30일 산업 자금 조달에 기여한 공로로 김원기 한국산업은행 총재(오른쪽)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는 필자.

◇과감히 발행시장 도전장...주간사 1호 진로주조 청약 장사진
1972년은 삼보증권이 인력과 조직, 사옥까지 모든 면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룬 한 해였다. 이를 발판으로 다음 해인73년에 증권회사로는 처음으로 기업공개 주선 업무에 뛰어들 수 있었다. 당시 신규 상장기업의 구주 매출과 신주 공모 업무는 한국투자개발공사가 전담해오고 있었는데 이를 삼보증권에서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발행시장에서 신규 상장 기업의 주식을 인수하는 것이야말로 증권회사의 고유 영역이자 매우 중요한 기능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국내 증권회사들은 영세성을 핑계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기업공개를 통한 산업자금 조달은 투자개발공사에게 떠넘긴 채 얼마 되지도 않는 거래수수료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재무부와 투자개발공사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기업 공개 주선은 증권회사의 고유 업무이므로, 우리도 인력과 조직을 갖출 테니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나는 곧바로 조사부를 만들고 인력을 확충했다. 선진국의 발행시장 제도를 공부할 수 있도록 조사부 직원들을 해외 연수도 보냈다.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춘 직원도3명을 새로 채용해 조사부에 배치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73년 6월 15일 진로주조의 구주 매출을 하게 됐다. 증권회사로는 처음으로 주간사 회사가 되어 기업공개를 주선한 것이다. 진로주조는액면가 1000원짜리 구주 2만5000주를 200%의 프리미엄을 붙여 주당 3000원에 매출했는데, 접수를 시작하기도 전에 청약 인파가 대거 몰려들었다. 삼보증권이 입주해 있던 유네스코 회관 주변에 이른 새벽부터 장사진이 이어지자 경찰이 출동해 정리했을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런 모습은 그 뒤 신주 공모나 구주 매출이 있을 때마다 으레 볼 수 있는 진풍경이 됐다.

진로주조의 구주 매출 최종 청약 경쟁률은 사상 최고치인 199대 1을 기록했는데, 나중에 진로주조의 주가는 6000원 선까지 올랐다. 이때 청약한 투자자들은 적지 않은 이익을 본 셈이었다. 진로주조에 이어 다음날인 6월 16일에는 진양화학의 구주 매출이 이뤄졌고, 7월 3일에는 대한페인트의 신주 공모를 주선했다. 또 8월 31일에는 동아건설의 구주 매출이, 10월 1일에는 국제화학의 신주 공모가, 11월 19일에는 삼진알미늄의 신주 공모가, 12월 24일에는 삼양타이어의 신주 공모가 이어졌다. 이로써 기업 공개 업무를 처음 시작한 73년 한 해 동안에만 삼보증권이 신주 공모 또는 구주 매출을 주선한 실적이 7개 기업에 31억3470만원에 달했다.



'오너' 기업인 일일이 찾아다니며 기업공개 설득.."삼보 능력, 투자공사 못지 않다" 평가

1973년 12월에 신주 청약을 하기 위해 증권회사 창구에 몰려든 투자자들. /사진=금융투자협회

이 정도 규모면 발행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첫 해 실적치고는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한 건 한 건이 성사되기까지는 지난한 설득 과정이 숨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기업 사주들은 공개를 하면 자기 회사를 빼앗기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기업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주주로 등장해 경영에 간섭할 수 있고, 회사 내부에서만 보았던 재무제표나 각종 경영지표를 외부에 공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꽤나 공을 들여야 했는데, 삼보증권의 기업 공개 실적은 그렇게 해서 겨우 이뤄낸 성과였다.

진로주조의 경우에도 평소 삼보증권과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기업 공개를 주선하게 된 게 아니었다. 하루는 내가 당시 이원보 기획조사부장과 함께 진로주조를 찾아가 직접 설득하기도 했다. 그때 장학엽 진로주조 사장과 장익룡 부사장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나와 이 부장은 기업 공개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우량 기업이 상장돼야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발전할 수 있다고 수없이 강조했다. 그러자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마인드를 가진 장 부사장이 먼저 수긍했고, 이어 장 사장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최종적으로 기업을 공개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뛴 덕분에 기업 공개 주선에 관한 한 다른 증권회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실적을 쌓았는데, 사실 재무부와 투자개발공사에서는 맨 처음 우리가 기업 공개 업무를 하겠다고 하자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증권회사로는 처음으로 주간사 회사를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자 당시 증권시장 육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남덕우 재무부 장관이 “대단히 소망스럽고 반가운 일”이라며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런 성과는 조사부의 뛰어난 역량 덕분이었는데, 삼보증권 조사부는 공개 예정 기업의 재무제표 분석과 주식 수요 예측 등에서 투자개발공사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다. 조사부 직원들의 자부심과 열의는 처음부터 대단해 기업 분석뿐만 아니라 국내외 경제 동향 파악도 놓치지 않았다.

몇 해 뒤의 일이지만 증권업계 최초로 문화공보부에 주보(週報)등록을 하고 81년 3월부터 「삼보투자」를 발행한 것이나 박정식 서울대 상대 교수를 초청해 매주 1회씩 재무관리 강의를 들은 것도 조사부 특유의 개척자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런 노력 덕분에 삼보증권이 우리나라 발행시장에서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처음 증권업계에 들어왔을 때는 유통시장밖에 몰랐다. 그러다 증권시장의 역할과 기능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역시 중요한 것은 기업자금 조달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됐다. 유통시장보다 발행시장이 증권인으로서 더 사명감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며, 증권업계가 산업 자본의 역군이라는 점을 깨달은 것은 삼보증권을 인수하고 나서 한참 뒤의 일이다. 그래서 70년대 들어서야 삼보증권이 앞장서 기업 공개를 주선하게 된 것이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면 증권인으로서 가장 큰 보람은 발행시장을 개척한 일이다.

증권사 최초의 주식시장 상장...자본확충·대형화로 유통·발행시장서 모두 '독보적 1위'

이른 아침부터 청약을 위해 증권회사 앞에 몰려든 사람들. 70년대 신주 공모나 구주 매출이 있을 때면 으레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사진=금융투자협회

삼보증권의 뒤를 이어 다른 증권회사들도 줄지어 기업 공개 주선 업무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70년대 내내 삼보증권의 독주는 이어졌다. 74년에는 삼화고무를 비롯한 5개 기업, 330억6500만원 규모의 기업 공개를 주선했고, 75년에는 쌍용양회를 비롯한 13개 기업, 1256억5000만원 규모의 기업 공개를 주선했다.

75년 9월에는 삼보증권 주식을 주식시장에 상장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잊지 못할 일화가 있다. 그 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김용환 당시 재무부 장관을 만났더니, 김 장관이 불쑥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증권회사는 남들한테는 기업 공개하라고 하면서 왜 정작 자신들은 기업 공개를하지 않느냐고 말이다.맞는 말이었다.

사실 정부에서는 74년 ‘5.29 대통령 특별지시’로 기업 공개를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그 뒤 1년간 48개 기업이 공개를 했지만 업계를 대표할만한 주력 기업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75년 8월 8일 ‘기업 공개 보완시책’까지 나온 것인데, 김 장관은 경제계를 상대로 기업 공개에 호응해달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증권업계에서는 제일 먼저 삼보증권이 주식시장에 상장하게 된 것이다. 기업 공개를 계기로삼보증권의 자본금 확충과 대형화가 급속도로 이뤄졌다. 1962년 설립 당시 2500만원에 불과했던 삼보증권의 납입자본금은 69년 12월 유상증자를 통해 3000만원으로 늘어났고, 71년 5월 5000만원이 됐다. 그러니까 근 10년간 자본금이 두 배로 늘어나는 데 그쳤던 것이다.

그런데 8.3 조치 직후인 72년 9월 유상증자를 통해 납입자본금을 1억원으로 2배 증액한 데 이어 그 해 12월에는 1억5000만원으로, 73년 8월에는 5억원으로 다시 크게 늘렸다. 그리고 75년 7월 20억원으로 증자한 데 이어 9월 기업공개를 하면서 30억원으로 자본금을 확충했다. 삼보증권 주식은 그 해 9월 30일 주식시장에 상장됐는데, 그로부터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77년 6월 자본금을 다시 50억원으로 늘렸고, 82년 4월에는 80억원이 됐다.
삼보증권의 자본금 규모는 이렇게 72년부터 10년동안 5000만원에서 80억원으로 무려 160배나 증가한 것이다. 증권업계는 물론이고 다른 어느 산업에서도 볼 수 없는 빠른 성장이었다. 이 같은 고속 성장은 무엇보다 국내 증권시장의 비약적인 발전이 밑바탕이 됐지만 유통시장은 물론 발행시장에서도 삼보증권이 확고한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전국적인 지점망 구축을 통한 주식 투자의 대중화와 세계적인 증권회사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16회는 지점 확장과 주식시장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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