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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텔레그램 '박사'는 결코 한 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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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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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걸 한국사이버보안협회 대표
김현걸 한국사이버보안협회 대표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요즘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신종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면면이 들춰지면서 사람들은 적지않은 충격에 빠져 있다. 여자들을 상대로 한 성착취 영상이 해외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유되고 판매돼 왔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대다수가 미성년자인 피해 여성들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복종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극심한 고통을 줬다. 그들의 야만성과 폭력성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케 할 만큼 공분을 일으키게 한다.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만큼이나 n번방 사건도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지고 있다. 가해자들은 과연 우리와는 전혀 다른 악마적 존재인가,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화제를 모은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진실을 가로막는 10가지 본능 중 ‘비난의 본능’을 언급한다.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시스템보다 악인을 찾아서 비난을 퍼붓는데 열중하느라 진실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번 n번방 사건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관련 당사자들을 일벌 백계하는 차원에서 단호한 법 집행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n번방은 그저 한 개인의 일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n번방 사건은 고대 이래로 지상의 세계에서 내려오던 성폭력이 복잡 다단하고 기이한 형태로 가상의 디지털세계에 뿌리내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SNS, 텔레그램, 화상채팅, 웹캠, 해킹프로그램, 가상화폐 등 사이버 세계의 수단들이 모두 범죄행위에 동원되고 있다.

문제는 n번방은 그 구조의 단순성 때문에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 가해자들을 찾아내는 데 비교적 용이한 편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유료회원의 암호화폐 거래가 해외에 기반을 둔 업체를 통해 이뤄졌다면 범죄 사실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청소년들을 또 다른 사지로 몰고 가는 몸캠피싱(음란영상을 미끼로 금품을 협박하는 범죄)의 경우에도 범죄자들은 대부분 해외 기반을 두고 있다. 청소년 피해자를 위해 무료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한국사이버보안협회가 올들어 3월말까지 300건의 피해 사례를 분석한 결과 범죄에 사용된 악성코드의 90%가 해외에 IP와 서버를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수사당국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해외 당국과 수사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추적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더욱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 것이다. 신종 코로나처럼 또 다른 변종 ‘박사’가 출몰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수요는 언제나 공급을 부르게 마련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루어낸 정보통신기술이 익명의 공간에서 추악함과 공격성을 드러내고 돈벌이의 악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는 언제나 존재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n번방 사건은 반드시 재발한다고 생각한다. ‘박사’는 결코 한 명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성인식과 함께 성범죄에 관대한 법제도와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괴물이 사이버 세상에서 자라날 것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시스템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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