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그리고 몰랐던 이동휘

'카지노' 이동휘, 사진제공=디즈니+

"형님 권무십일홍이라고 아세요? 꽃이 열흘동안 붉을 수가 없다. 벚꽃도 개나리도 열흘 지나면 다 뒤진다. 그런 뜻이죠. 보세요. (거리에 있는) 꽃들이 다 졌잖아요, 지금."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극븐 연출 강윤성)의 양정팔(이동휘)은 자신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 있는 차무식(최민식)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를 듣던 차무식은 "권무가 아니라 화무라고 하는거야. 화무십일홍. 꽃을 권력에 비교한 말이야. 좀 책 좀 봐"라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주며 "창피하다. 창피해"라고 면박을 준다. 무식의 말에 정팔의 얼굴이 순간 미묘해진다. 그런 상황이 자연스럽다는 듯 통달한 표정이기도 하고, 묘하게 떨떠름하기도 하다. 이동휘가 연기한 '카지노'의 양정팔은 화무십일홍을 권무십일홍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딘가 허술한 모습에서 그가 이전에 연기해왔던 캐릭터들과 비슷하다.



반면 마음에 품었던 여자 김소정(손은서) 앞에서는 그동안 보지못했던 진한 순정을 보여준다. 소정이 무리하게 일자리 부탁을 해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무식에게 아쉬운 소리까지 해가며 이를 들어준다. 소정이 자신의 동료인 필립(이해우)과 눈이 맞아 변심하던 순간에도, 정팔은 불켜진 소정의 집앞에서 받지 않는 전화기를 한참이나 붙든 채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다른 손에는 담배를 든 채 묵묵히 앞을 지킨다. 소정이 자신의 전화를 의도적으로 받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날 소정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카지노' 이동휘, 사진제공=디즈니+

정팔이라는 인물의 친숙한 이름처럼 이동휘는 '카지노'에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익살스러운 모습도 힘들이지 않고 장면 곳곳에 품어낸다. 도박에 손을 댔다가 수십억원을 빚지고 한국으로 쫓겨난 뒤 다시 무식에게 필리핀으로 부름 받던 순간, 분명 이동휘의 얼굴에서 눈물과 콧물이 펑펑 쏟아지던 진지한 순간이었음에도 뻘하게 웃음이 터진다. 진지한 얼굴을 하고선 동료 상구(홍기준)와 펼치는 티키타카도 코믹스럽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고 왠지 가벼울 것 같은 남자.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남자. 사실 그동안 이동휘가 극에서 보여준 캐릭터는 곱씹어보면 의외로 진지한 면이 많았다. tvN '응답하라 1988'의 동룡은 부모의 마땅한 살핌을 받지 못하고 늘 컵라면으로 점심을 떼우는 청소년이었고, MBC '자체발광 오피스'의 도기택은 좌절감과 실망감을 겪으며 홀로 눈물을 삼키던 계약직 직장인이었다. 다만 그를 유명배우로 만들었던 '응답하라 1988'에서 과장되고 가벼웠던 모습이 강렬했던 탓에 '웃긴 배우'라는 인식이 굳혀졌다. 실제로 여러 편의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감초 같은 역할을 인상적으로 해내며 특유의 캐릭터로 광고까지 여러 편 찍었다.

'카지노' 이동휘, 사진제공=디즈니+

'카지노'는 이러한 이동휘의 익살을 품으면서도, 그동안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았던 저변의 모습들을 한데 뒤섞는다. 무식도, 상구도, 시청자도 헐렁해 보이는 정팔이 익숙해질 때쯤, 사람에게 상처 받고 그 자리를 점점 욕망으로 채워넣으며 눈빛부터 탁해진 정팔의 변해버린 얼굴을 바라보면 이내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긴장감이 언젠가는 모시는 형님인 차무식에게 칼날을 드러낼 것만 같은 짙은 의구심까지 동시에 피어낸다.


이동휘는 '카지노'를 통해 코믹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진지하고 진중하며, 또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연민과 상처까지 중첩한 모습도 가능하다는 걸 완벽하게 증명해 보인다. 그래서 이동휘를 그저 웃긴 배우로만 알고 있기엔 그 수식이 다소 아쉽다. 이동휘는 어느 작품에서건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배우다. '카지노'는 그의 역량을 제대로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