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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의 틱, 택, 톡] 66년..번스타인의 6.25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6.06.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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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6.25전쟁 미 참전용사인 세이모어 번스타인(Seymour Bernstein)씨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앰버서더호텔에서 방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사진= 뉴스1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6.25전쟁 미 참전용사인 세이모어 번스타인(Seymour Bernstein)씨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앰버서더호텔에서 방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사진= 뉴스1


오래된 손이 그만큼 오래돼 보이는 피아노의 건반을 두들긴다.

“이 옥타브를 잘치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 정확하게 칠 수 있을까?.. 미리 준비해야 돼..” 소프트페달을 밟은채 약하게 두드리는 낮은 음의 피아노 소리처럼 부드러운 음색이 귓가를 쓰다듬는다.

화면은 그렇게 말하는 한 노인의 얼굴을 비춘다. 쌍꺼풀 짙은 눈은 빼꼼하고 푸른빛이 강한 회색 눈동자는 골몰하는 반짝임을 보인다. 콧날은 중간이 살짝 꺾여있다. 콧망울로부터 시작되는 입주름이 깊지만 그 때문에 괴팍하다거나 심술궂어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얼굴은 전반적으로 동글동글 부드럽고 피부는 잔주름과 검버섯이 드문채 밝은 빛을 띤다. 작고 온화하게 늙어간 귀여운 할아버지. 세이모어 번스타인(89)이다.

지난 4월 국내서도 개봉된 에단 호크 감독의 다큐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는 그렇게 시작된다. 몇몇 예술영화 상영관에선 아직도 상영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6.25 66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의 초대로 23일 내한했다. 그는 1951년 4월 인천에 도착, 이듬해 11월 전역할 때까지 미 8군에 소속돼 위문 공연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최전방에서 100여 차례 피아노 공연을 하며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던 군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불어넣었었다.

한국전쟁 참전당시의 세이모어 번스타인./사진=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 캡처.
한국전쟁 참전당시의 세이모어 번스타인./사진=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 캡처.

한국전쟁 참전당시의 세이모어 번스타인./사진=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 캡처.
한국전쟁 참전당시의 세이모어 번스타인./사진=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 캡처.


에단 호크의 영화속에서도 번스타인은 당시를 회고한다. “멋진 바이올리니스트 케네스 고든과 같이 우리가 배치된 중대의 중위를 찾아가 이 사람들을 위해서 연주를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중위는 ‘클래식은 안돼. 아무도 듣지않을거야’라고 말했다. 그래도 연주를 하겠다고 우겼다. 한국 헌병학교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빌려 트럭 한 대와 영어를 모르는 인부 여섯명과 함께 순회공연을 했다.” 클래식이 처음인 병사들앞에서의 공연이었지만 우는 사람도 있었고 반응은 열광적이었다고 회상한다.

한국에 발을 디딘 첫날 죽을만치 무서웠다는 번스타인은 “너무 무섭고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한국에서 첫날밤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 5시경 일어나 보니 안개가 자욱했다. 식당에서 땅콩이랑 먹을 것을 챙겨들고 나갔는데 안개속에서 자그마한 코 하나가 불쑥 들이밀어졌다. 새끼 사슴이었다. 사람의 손을 탄 듯 망설이지도 않고 다가와 땅콩 든 손에 코를 박았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죽어서 천국에 왔구나. 거기 천국이 있었다.” 번스타인의 얼굴은 아기같은 순수한 웃음을 그려낸다.

하지만 전쟁의 기억은 그의 영혼에도 크나큰 상흔을 남겼음에 틀림없다. “당시 기록했던 일기를 20년이상 잊고 있었는데 어느 일요일 펼쳐읽고는 하루종일 울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하는 노인의 눈자위엔 다시 흥건히 눈물이 맺혔다. “..시체들이 생각나서 ..기억속에 묻었었다... 생각하면 너무 괴로워서.. 하지만 일기장엔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안울려고 했는데.. 이럴줄 알았다니까”라 말하는 구순 노인네의 넋두리. 6.25의 비극을 잊는데는 한평생도 길지 않았던 모양이다.

1990년의 기사에서 비(非)6.25 세대가 전국민의 73%란 인구통계를 접할 수 있었다. 이미 26년전 이야기다. 그 26년동안 27%의 6.25세대중 얼마만큼 많은 이들이 작고했을까? 세기의 비극 6.25는 그들과 함께 그렇게 잊혀지는가.

작금의 남과북은 서로 줄기차게 평화통일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편에선 무수단이 날아다니고 대포동이 날아다니고 핵실험이 이어지고 사드가 배치되네마네 하고 있다. 하지만 6.25는 66년전에 이미 명확히 일깨워준 바가 있다. 전쟁이란 방법으론 민족통일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어느 한쪽의 이데올로기로는 다른 한쪽을 통합할 수 없다는 사실을. 푸른 눈의 이방인마저 해묵은 트라우마에 한평생을 지내고도 울게만드는 그런 비극은 다시 있어선 안되겠다.

23일 내한한 번스타인은 27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주관하는 만찬 행사에 참석, 6·25전쟁 당시 전우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줬던 피아노 연주를 유엔참전용사들을 위해 66년 만에 다시 들려줄 예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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