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중요사실 누락해 과징금 깎은 변호사 징계 요구

공정위 세종청사 전경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변호사협회에 중요한 의뢰인의 재무정보를 고의로 누락한 국내 대형로펌 소속 A변호사에 대해 징계를 요구했다.

하지만 행정처분을 내리기 위한 중요한 증거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공정위의 책임은 외면한 채 법률대리인의 행위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으려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3일 공정위에 따르면 A 변호사는 2016년 4월 시멘트 가격 담합혐의로 공정위로부터 43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성신양회의 이의신청을 대리했다.

A 변호사는 이의신청 과정에서 성신양회가 2015년 재무제표 등을 토대로 원심결 의결일인 2016년 3월3일을 기준으로 직전 3개년(2013년~2015년) 가중평균 당기순익이 적자라고 주장했다. 2016년 납부할 과징금을 비용(포괄손익계산서)에 미리 포함해 적자가 나도록 조정한 것이다.

공정위 과징금 고시에는 이처럼 선반영한 과징금은 제외한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과징금 감경여부를 심의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재무제표에 과징금이 선반영됐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재결을 통해 2016년 6월 과징금 437억원의 50%인 218억원을 깎아줬다.


이후 공정위는 지난해 9월 성신양회의 다른 담합사건을 조사하던 중 2015년 재무제표에 과징금이 선반영 돼 있던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2017년2월 성신양회의 이의신청 재결을 직권취소했다. 이어 4월 감경한 과징금 218억원도 재부과했다.

공정위는 A변호사가 과징금을 선반영해 적자가 났다는 이유로 과징금 감경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고의로 숨겼다고 보고 있다. 앞서 A변호사는 골판지 원지 담합사건의 대리인을 맡았다. 당시 공정위는 이처럼 과징금을 선반영한 제무제표의 문제점을 A변호사에게 알린 바 있었던 것.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당시 A변호사에게 '재무제표상 적자가 났는데 과징금 선반영 됐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해 선반영되지 않은 수정된 재무제표를 제출받은 적이 있다"며 "즉 과징금이 선반영된 재무제표는 과징금 경감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A변호사는 공정위의 재결취소에 대한 무효확인 및 취소소송를 제기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지난달 공정위 재결에 하자가 있어 재결취소는 위법하지 않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공정위는 A변호사의 행위가 변호사법 등의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대한변협에 이에 대한 검토 및 조치를 의뢰키로 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에 사건의 단초를 공정위가 제공했기 때문이다.

성신양회가 적자라는 이유로 과징금을 분할납부하겠다고 신청하는 과정에서 공정위 담당자가 적자는 감경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A 변호사가 과거 공정위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해당 공정위 직원은 현재 출산과 육아 등을 이유로 휴직 상태다.

또 공정위는 200억원 넘는 과징금을 깎아주면서 공시 내용을 확인조차 안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경 확정 전 성신양회가 공시한 재무제표를 보면 A 변호사가 제출한 같은 내용에 적자가 선반영됐다는 사실이 부기돼 있었던 것이다.

공정위는 문제를 인식하고도 내부 관련자 징계 등 후속조치에 대해선 여전히 미적거리고 있다. 법률검토와 소송에 시간이 걸려 변호사 징계 개시 의뢰에 시간이 걸렸다는 해명이다.

신 부위원장은 "선반영 확인을 못한 공정위의 책임은 인정하고 관련직원에 대한 조치도 검토 중"이라면서도 "최종 결정을 내린 위원회의 책임이 있다는 논의도 있었는데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필요하다면 본인이 책임을 지고 가겠다고 말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