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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아바나 혁명광장에 가던 날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8.02.1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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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마르티 기념탑과 동상/사진=이호준 여행작가
호세 마르티 기념탑과 동상/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여행을 하다 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을 흔히 하게 된다. 애써 찾아가면 그날따라 보고 싶은 곳이 문을 닫았거나 기대했던 행사가 열리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쿠바에 머물 때 아바나 혁명광장에 간 날도 그랬다. 저녁 무렵이었는데 광장은 사막처럼 비어 있고, 뭔가 이질적인 기운이 부유하고 있었다. 시인이자 쿠바 독립의 영웅인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기념탑과 동상이 있는 언덕에 가보고 싶었는데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가지 말라면 더 가고 싶은 법. 땅거미에 의지해 슬그머니 올라가보려고 했더니,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득달같이 달려와 걸음을 꽁꽁 묶었다. 근위대가 주둔하는 기념탑 근처에는 총을 든 군인이 로봇 닮은 걸음으로 오가고 있었다.

확인을 해보니 혁명기념 군 열병식 준비를 위해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열병식은 통상 군 창건일이자 피델 카스트로 등이 탔던 그란마 호가 쿠바에 도착한 12월 2일 열린다. 사전에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간 게 문제였다. 기념탑에 올라가는 게 무산되고 나니 딱히 볼만한 것도 없었다. 축구장 세 배 크기쯤 된다는 광장은 구경거리는커녕 사방이 휑하니 뚫린 게 황량하기까지 했다.

광장을 가로지른 끝에서 만나는 내무부 건물 전면에는 체 게바라의 얼굴과 그의 표어 ‘Hasta la Victoria Siempre(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노을 속에 깊게 가라앉아 있는 체 게바라의 얼굴을 보니 그가 걸었던 생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39년의 삶 동안 ‘혁명’이라는 단어 속에 살았던 한 사내. 그가 바로 체 게바라다.

잘 알려졌다시피 체 게바라의 모국은 쿠바가 아니라 아르헨티나다. 1928년 6월 14일 출생했고, 194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의 삶은 1951년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아메리카 4500km를 여행하면서부터 궤도가 정해졌다. 1953년 박사학위를 받고 두 번째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떠난다. 이때 볼리비아, 페루, 과테말라와 파나마를 거쳐 코스타리카를 여행했다. 그런 여정을 통해 체 게바라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민중들의 삶을 피부로 체험했다. 그의 안에 혁명이 싹트고 자라는 시기였다.

그는 과테말라에서 혁명에 참여했으나 실패로 끝나면서 멕시코로 탈출, 1955년 7월 피델 카스트로 등과 만난다. 멕시코에서 쿠바혁명군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피델 등 82명의 동지들과 함께 1956년 11월 26일 쿠바로 향한다. 그때 타고 갔던 배가 요트를 개조한 그란마 호였다. 하지만 잠입에 실패하고 바티스타 정부군에게 쫓기던 끝에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에 숨어들어 본격적으로 게릴라 활동을 벌인다.

1959년 혁명에 성공하여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으면서 쿠바 시민이 된다. 라카바니아요새 사령관, 국가토지개혁위원회 위원장, 중앙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쿠바정권의 기초를 세우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내무성 건물에 새겨진 체 게바라/사진=이호준 여행작가<br />
내무성 건물에 새겨진 체 게바라/사진=이호준 여행작가

하지만 그는 권좌에 오래 앉아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1965년 4월 소련과 갈등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체 게바라는 모든 걸 버린 뒤 아프리카 콩고로 떠난다. 그는 콩고에서 게릴라 부대를 훈련시키고 게릴라 활동을 펼치지만 혁명연합이 와해되면서 성과 없이 쿠바로 돌아오게 된다. 끝까지 혁명의 현장을 떠날 수 없었던 그는 1966년 볼리비아로 간다. 1967년 10월 산악지대에서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포위되어 총상을 입고 생포당한 다음날 곧바로 총살된다. 빠른 총살의 배경에는 미국 CIA가 있었다. 그의 유해는 사망한 지 30년 뒤인 1997년 발굴되어 쿠바 산타클라라에 매장됐다.

이상이 간략하게 정리한 그의 일생이다. 그는 세상을 뜬 뒤 더욱 각광을 받았던 인물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크리스찬과는 먼 삶을 살았는데도 ‘전사 그리스도’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현실의 안락과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죽어간 그의 궤적이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한 것이다. 이제는 체 게바라가 생전에 남겼다는 말들이 그의 투쟁과 삶을 웅변해준다.

"네 자유와 권리는, 딱 네가 저항한 만큼 찾는다."
1966년 2월 체 게바라가 장녀 일디타에게 보낸 편지 역시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명문이다.

“어른이 되었을 때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여라. 이 말은 네 나이에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정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라. 나는 네 나이에 그러지를 못했단다. 그 시대에는 인간의 적이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네게는 다른 시대를 살 권리가 있다. 그러니 시대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체 게바라의 목소리를 환청처럼 들으며 혁명광장을 걸었다. 황혼이 흔적을 지운 자리를 먹빛 어둠이 차지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막 떠오르던 달이 전봇대 위에 잠시 걸터앉아 있었다. 정말 ‘쟁반 같이’ 크고 둥근 달이었다. 달 위에 오래 전에 떠난 체 게바라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혁명광장에서 특별히 본 것은 없지만 끝까지 순수를 놓지 않았던 한 혁명가를 직접 만나기라도 한 듯 감회가 깊은 날이었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아바나 혁명광장에 가던 날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2월 9일 (09:32)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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