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일에 세뱃돈도 주셨는데…"

“올 1월 1일에 세뱃돈도 주셨는데..” 19일 분향을 마치고 나온 문다영(17·가락고1)양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새해 인사를 드렸어요. 올 해가 마지막 새해인사가 될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작은 어깨로 흐느꼈다. “너무 아프다 가셔서 마음이 슬퍼요.”

17살 소녀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저는 대통령님을 ‘할아버지’라 불렀어요.” 김대중 공식 펜클럽(DJROAD.com) 회원인 부모님을 따라 종종 김 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올 1월 1일에도 김 전 대통령은 문 양에게 빳빳한 만 원짜리를 세뱃돈으로 쥐어주며 “잘 커라. 아프지 마라”고 덕담을 했다. 본인은 거동을 못 해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서도 어린 소녀의 건강과 미래를 걱정했다. “잘 걷지도 못하셨는데 제 걱정을 해주신 게 너무 감사해요.”


문양의 아버지인 문명섭(45·서울 송파) 씨도 침통한 표정이었다. “병원에서 건강하게 퇴원하시면 삼계탕을 사주시겠다 약속했었어요. 그 삼계탕, 꼭 함께 먹고 싶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고 김 전 대통령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는 문씨는 서거 소식을 접하고 비통했다고 했다. “건강을 회복하시길 바라며 기도를 준비중이었어요. 그 때 TV를 틀었는데..” 문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분향소의 고 김 전 대통령 사진을 바라봤다.

이날 서울시청광장은 대한민국의 큰 별이 진 것을 슬퍼하고 있었다.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를 정도로 더웠지만 사람들은 손수건을 꺼내 땀이 아닌 눈물을 훔쳤다. 손에 국화를 든 시민들은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저마다 김 전 대통령을 추억하며 그의 떠나는 길을 함께 하고 있었다.

100일 휴가 중 분향소를 찾은 현역 군인도 있었다. “어제 휴가를 나왔는데 고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분향소가 세워지면 꼭 찾아 봬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휴가 중임에도 군복을 입고 분향소를 찾은 백형찬(22·서울 영등포)씨는 영전에 국화를 올리고 거수 경례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데 일조한 전 대통령을 향한 존경의 의미라 했다. 백씨는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신 분인데 부디 좋은 곳에 가시길 바란다”며 김 전 대통령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더운 날씨에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을 위해 광장에 해가림 천막이 놓였다. 그 천막 아래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박지호(84·서울 강남) 할아버지를 만났다. 김 전 대통령과 한살 터울인 그는 "내가 김 전 대통령에게 가장 고마운 게 뭔지 알아? ‘자유’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알려줬다는 거야”라고 말했다. 황해도에서 1940년에 월남해 장교까지 지낸 박 할아버지는 젊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고 김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심어 놓은 자유를 절대 잊으면 안 돼. 그 분이 어떻게 이루신 건데.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 정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광장은 온종일 뜨거웠지만 분향소를 찾는 조문행렬은 끊이지 않았고, 저마다 김 전 대통령을 향한 추억과 아픔을 가슴에 담은 채 숙연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