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규제 36일만에 첫 허가 내준 日… 추가 규제등 불확실성 여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일본 수출 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일본 정부가 8일 대(對)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한 지 36일 만에 처음으로 EUV 포토레지스트(극자외선용 감광액) 개별수출허가를 내 준 것은 정치적 목적의 경제보복이나 수출 금수조치가 아니라는 명분을 쌓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성 대신(장관)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엄정한 심사를 거쳐 안전보장 우려가 없는 거래임을 확인한 안건에 대해서는 이미 수출을 허가했다”며 “개별 사례는 원래 공개하지 않지만 한국 정부가 이 조처에 대해 금수라는 부당한 비판을 하고 있어 예외적으로 밝히게 됐다”고 말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으로 수출한 전략물자 가운데 군사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폼목에서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해 수출관리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일본 정부가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앞으로 일어난 국제 분쟁해결 과정에서 유리한 명분을 쌓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전문가들도 일본의 이번 수출허가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수출무역관리령을 이미 개정·공포해 28일 시행을 앞둔 상황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 입맛에 맞춰 얼마든지 추가 규제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 정부가 내세운 수출규제 강화 명분에 맞춰 마치 ‘금수조치가 아니다’란 것을 홍보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며 “가시적 조치가 나올 때 까지 큰 흐름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 산케이신문은 이날 복수의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가 수출 관리 강화를 위해 군사적 전용이 쉬운 제품과 기술을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성 대신(장관)은 “정당한 거래는 허가를 하겠지만 수출 관리를 위해 계속 엄격한 심사를 하겠다”며 “무역 이외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는 일이 없도록 엄정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인식도 비슷하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의미를 더 부여할 것도 덜 부여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며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할 때까지 상황이 변하는 것은 없고 일본의 진의를 섣부르게 판단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초 이날 정부서울청사에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일본의 한국 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 제외에 맞대응 조치로 일본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 우대를 없애는 방향으로 ‘전략물자수출입고시’를 개정하려고 했으나 구체적 내용을 추가 논의하기로 연기했다. 일본의 반응을 지켜보며 압박 카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산업계는 핵심소재 수출허가로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감과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전면에 내세웠던 핵심소재 3개에 대한 수출허가를 내주면서 다른 필수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교란 작전’을 펼 경우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있는 그대로 보면 수출허가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일찍 이뤄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이라면서도 “추가 수출규제에 대한 가능성이 여전해 다양한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라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보수적으로 대응책으로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강인수 한국국제통상학회장(숙명여대 교수)는 “일본은 수출을 왜곡하려는 게 아니라 정당한 과정이란 걸 주장하는 것 같은데 상황 변화에 따라 수출을 까다롭게 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며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할 안전장치를 확보하고 국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