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며 세월을 제압한 현재형 디바, 김완선

사진=tvN

다시 태어난 기분일까. 지난 세월이 야속할까. 자신이 데뷔한 시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계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화려하게 무대를 펼치는 가수 김완선에게 시선이 꽂힌다.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적 가수 김완선을 새삼 곱씹게 된다.


김완선은 현재 tvN ‘댄스가수 유랑단’(연출 김태호)에서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와 함께 전국을 돌며 선사하는 공연으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 있다. 특히 자신의 히트곡 ‘리듬 속의 그 춤을’(1987)과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1990)로 꾸미는 무대는 그야말로 경의를 표하게 만들고 있다.



김완선은 외모부터 노래, 그리고 현란한 댄스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 하나 세월이 무색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의 곡들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보아의 표현대로 “촌스러운 게 없다”. 보아나 화사 등 막내 진영과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지는 무대가 연출된다.


1986년 데뷔해 ‘한국의 마돈나’로 시대를 풍미한 김완선이 녹슬지 않은 관록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시대를 넘나드는 세련된 음악성으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요즘 발매됐다고 해도 믿어질 만큼 현대적인 곡이 1980~90년대에 탄생했다는 사실에 경탄하게 되고, 그 주인공이 김완선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김완선의 뒤를 이어 여성 솔로로 시대를 평정한 엄정화나 이효리에게는 차례로 ‘댄싱 디바’, ‘섹시 퀸’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며 환호했던 세상이 앞서 나온 김완선에게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감탄은 더 커진다. 방송에서도 직접 언급했지만, 김완선은 섹시 또는 댄스가수라는 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데뷔하면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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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이 있던 것도 아닌데 단지 눈빛이 농염하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 금지가 된 바 있다. 무엇보다 무대를 압도하는 그의 과감한 퍼포먼스가 대중을 열광하게 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음악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록을 바탕으로 하는 곡들에 댄스를 녹여낸 새로운 시도와 그 완성도가 오늘날 새삼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들인데, 당시에는 과소평가됐다. 한국 록의 대부인 신중현이나 산울림 김창훈, 기타리스트 손무현 등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로부터 곡을 받았는데도 그랬다.


요즘은 비주얼과 퍼포먼스라는 요소가 너무도 당연하고 중요하게 평가받지만, 당시는 소위 오디오형 가수들이 득세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비디오형 가수였던 김완선은 오디오형 가수들보다 음악성은 떨어지는, 춤만 잘 추는 가수라는 인식이 컸다. 절정의 인기와는 별개로 음악적 평가를 제대로 받은 걸 본 적 없는 김완선을 두고 지금에서야 앞서가는 가수였구나 깨닫게 되면 그 시절 무슨 색안경으로 그를 바라봤던 것인가 씁쓸한 마음으로 성찰하게 된다.


그러나 댄스음악이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기 전이라 춤곡, 율동을 겸비한 가수 등으로 생소하다는 듯 설명되다 기어이 댄스가수의 시대를 열어준 것만으로도 김완선은 엄청난 업적을 세운 선구자였다. 지금은 도대체 어떻게 그랬을까 싶지만 참으로 근엄한 잣대가 세상을 짓누르던 시대를 김완선이 오롯이 뚫고 나오는 위업을 세웠다.


엄숙주의가 팽배하던 때였고, 다름이 틀림이던 시절이었다. 특이하거나 튀면 억압받았다.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나 개념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중가수를 향한 잣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시대의 무게를 이겨낸 김완선 덕분에 그 뒤로 엄정화와 이효리, 보아, 화사, 그리고 수많은 여성 댄스 가수들이 지금과 같은 입지를 다질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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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댄수가수가 주류가 된 시대를 맞아 ‘원조 섹시 디바’로서 김완선이 공로를 인정받는 중이다. 또한, 거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댄스가수 유랑단’을 통해 한자리에 모인 세대별 섹시 디바들과 함께 무대를 통해 어깨를 겨루는 가운데 김완선이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의 실력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음악도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몇해 전부터 다양한 예능 출연으로 가수이기보다는 방송인으로 비쳐지고, 미술전시회까지 열어 화가로서도 활동하며 외연을 넓히는 모습이었다면 ‘댄스가수 유랑단’을 통해서 또 다시 가수로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김완선이 모진 시대를 버티고, 긴 세월을 견뎌낸 끝에 후배들과 더불어 자유롭게 즐기며 스스로를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만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옛 명성을 추억팔기 하는 지나간 스타가 아니라 여전히 무대를 마음껏 누비는 가수로서 김완선이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팬들에게나, 섹시 디바 후배들에게나 참 다행이다 싶다. 최근까지도 새로운 곡을 꾸준히 선보이고 일흔에도 노래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완선은 대한민국 여성 댄스가수 계보에서 영원한 롤모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