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휘발유엔 옥수수 기름 섞는데, 한국은 왜 안 해요?"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수입 곡물의 가격이 최근 2년 새 47%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한 재래시장에 수입산 곡물이 진열되어 있다. 이날 관세청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올해 2월 곡물 수입량은 196만4천t(톤), 수입금액은 7억5천831만달러로 집계됐 t당 가격은 386달러로, 지난해 동월(306달러)보다 26.0% 올랐다. 이로써 올해 2월 t당 수입 곡물의 가격은 2013년 5월(388달러) 이후 8년9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오일쇼크’에 이어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는 ‘애그리플레이션’(Agriflation)이 가속화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극대화하고 있다. 2022.3.16/뉴스1

고유가 시대 대체연료로 주목받는 바이오에탄올의 국내 시장 도입이 미뤄지고 있다. 옥수수 등 곡물에서 추출하는 바이오에탄올은 휘발유 대비 가격이 싸고 탄소배출량도 적어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상용화가 이뤄졌지만, 우리나라에선 식량 안보와 국민적 동의 등의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8일 정부와 정유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윤석열정부의 바이오연료 시장 확대 방침과 '제5차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및 이용·보급 기본계획'에 따라 바이오에탄올 혼합연료의 보급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단계적 시범사업 추진을 검토키로 했지만 관련 의사 결정을 미루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불안정한 국제 유가에 대응하고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단으로 바이오에탄올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지만 경제성, 안전성, 기술개발 능력 등을 고려해봤을 때 정부 차원의 구체적 행보를 결정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미국처럼 바이오에탄올 사용이 일상화되려면 자국 내 작물 공급 확보, 국민 동의, 바이오에탄올 기술력 등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산업부나 업계도 대체 에너지원으로 바이오에탄올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말했다.

바이오에탄올은 옥수수·사탕수수·감자·보리·고구마 등 작물을 발효시켜 연료 첨가제로 사용하는 바이오연료다. 작물을 사용하다보니 원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탄소배출량도 적어 세계 각국에서 바이오에탄올의 개발과 상용화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법적으로 모든 휘발유에 바이오에탄올을 혼합토록 하고 있다. 미국은 2005년 바이오에탄올을 의무적으로 연료에 혼합하는 '에너지정책법'을 도입, E10(바이오에탄올 비율 10%) 연료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 미국 내 주유소의 98%가 바이오에탄올을 섞은 휘발유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은 바이오에탄올을 물가 안정 수단으로도 사용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국제 유가 폭등에 따라 올 여름 한시적으로 E15(바이오에탄올 비율 15%)의 판매를 허용했다. 바이오에탄올 혼합비율이 높아질 수록 연료 가격은 떨어진다. 브라질은 바이오에탄올 비율이 각각 27%와 95%인 E27, E95를 사용하고 있으며 중국은 E10의 사용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바이오에탄올은 그동안 가격 경쟁력 덕분에 휘발유의 대체재로 주목받았지만 최근엔 곡물 가격 급등 때문에 자칫 가격이 오히려 약점이 될 위기에 놓였다.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 따르면 올해 4월 옥수수 가격은 톤(t)당 322달러로 2020년 4월 124달러에서 두 배 이상 뛰었다. 같은 기간 밀 역시 190달러에서 475달러까지 치솟았다. 싼 값에 만들 수 있었던 바이오에탄올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후 변화에 따른 작황 불안도 문제다. 해당 지역을 찾아내 묻힌 양만큼 뽑아내는 원유와 달리 작물은 일조량, 강수량, 자연재해 등 기후 조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바이오에탄올 생산을 위한 공급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바이오에탄올의 주 원료가 먹거리인 탓에 자칫하면 바이오에탄올 생산 확대가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넘어야 할 산이다. 각국 정부 입장에선 바이오에탄올 사용에 따른 기름값 하락보다 밥상물가 상승에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최근 식량 안보라는 명분 아래 국가별로 곡물 수출 금지 조치가 이뤄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인 인도는 국내 소비자 가격 상승을 이유로 지난 1일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설탕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파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은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이집트도 밀과 옥수수의 수출을 중단한 바 있다.